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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궁극원자 아누 [아누] 현자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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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10,528회 작성일 16-06-0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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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840, Vote: 9, Date: 2002/12/07 01:24:00 , IP: 210.123.120.114
글 제 목 [아누] 현자의 돌
작 성 자 문성호


현자의 돌 


연금술 사상의 밑바탕에는 모든 자연만물은 변화하기 마련이라는 굳은 믿음이 깔려 있다. 고대인들이 보기에, 그리고 불과 이백년 전만 하더라도 변성(變性)은 자연과 생명의 실체 그 자체라고 받아들여졌다. 곤충의 애벌레는 자라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다시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고, 얼음은 녹아서 물이 되거나 수증기가 되어 사라진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바위와 산도 언젠가는 닳고 부서져 그 형태가 바뀐다. 그렇다면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듯이, 모든 물질이 태어나고 자라다가, 이윽고는 부패해서 사라지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설을 내세워 모든 물질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원소들이 갖가지 비율로 결합하여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원소들이 서로 다른 원소로 변할 수 있다고, 예를 들면 흙이 물로, 물이 공기로, 공기가 불로, 그리고 다시 불이 흙으로 서로 변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 이전에 원초의 물질(‘원물질’이라 하자)이 있어 네 가지 성질(뜨거움, 차가움, 축축함, 건조함)이 이 원물질에 각인됨으로써 네 원소가 만들어졌으며, 각 원소는 이 성질을 바꿈으로서 다른 원소로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각 물질은 원물질과 특정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 형상을 바꾸면 되었다. 이것은 나중에 다루게 되겠지만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어쨌든 연금술사들이 시도한 것도 이를테면 이 형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자론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이 보기에 황당해 보이는 이 4원소설과 원물질론은 연금술뿐만 아니라 이후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사상계 전반을 지배하던 이론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며 연금술사이기도 했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도 “연금술은 이런 식으로, 즉 하나의 물질에서 그 속에 내재한 특정 형상을 제거하여 원래의 물질을 파괴한 후에 다른 특정 형상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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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설의 개요



연금술사들은 다른 모든 자연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금속들도 끊임없이 완전함을 향해서 나아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보기에는 금속이나 광물도 동물이나 식물처럼 자라나는 것이다. 이 경우 광물을 키우는 것은 대지의 품이어서, 옛날 사람들은 광물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일정기간 광산을 폐쇄하기도 하였다. 연금술은 다만 자연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야 일어날 일을 실험실에서 빨리 일어나도록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금속의 완전한 형태는 금이다. 14세기의 연금술사 페트루스 보누스는 말했다. 

“금속 중에서 완벽함을 갖추고 그 성질에서 최고의 완전한 단계에 도달한 유일한 금속이 이른바 금이다. 나머지 다른 금속들은 모두 이 금으로 변화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금은 녹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열하여도 변하지 않는다. 중국의 위백양은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 금반귀성(金返歸性)의 장에서, “세상 만물은 불 속에 들어가면 모두 타게 마련이지만, 황금은 맹렬한 불 속에서도 그 빛깔이 선명한 광채를 잃지 않는다. 천지가 개벽한 이래 해와 달이 일찍이 그 광명을 잃은 일이 없듯이, 황금도 그 성질에서 절대 깨어지거나 부패하는 일 없이 그 중후함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중세유럽을 비롯하여 여러 시대의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완벽함의 상징인 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철학자의 묵주>에서 “우리의 금은 흔히 말하는 금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였듯이, 연금술은 금을 제조하는 데만 국한된 기술은 아니었다. 이 점에서 연금술(鍊金術)이라는 한자 용어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아랍, 중세유럽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 등에서도 행해졌는데, 놀랍게도 그 시대적 지리적 차이를 넘어 많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유럽 연금술사들은 자주 황색의 과정을 생략해버리긴 했지만, 연금술은 대체로 흑화와 백화, 황화, 적화의 과정을 거친다. 18세기 프랑스의 연금술사 동 페르네티는 그의 연금술 사전에서 연금술의 처리과정을 하소와 응결, 응고, 용해, 소화, 증류, 승화, 석출, 밀랍, 발효, 증식, 사영 등의 열두 단계로 분류하여 놓았다. 

이런 연금술의 과정을 통해 모든 금속의 부모인 유황과 수은이 결합하여 이른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이 현자의 돌은 붉거나 흰 가루로, 기저금속을 금으로 변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병통치약, 영생의 불사약이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금술사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금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현자의 돌이었다. 현자의 돌을 얻기 위해 많은 연금술사들이 그들의 길지 않은 전 생애와 전 재산을 걸기도 하였다. 현자의 돌은 엘릭시르 또는 영약(靈藥), 만능약, 생명의 물, 아르카눔, 처녀의 젖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고대 인도의 연금술사들은 소마(Soma), 이슬람의 연금술사들은 라사야나(Rasayana)라고 불렀다. 때로는 그냥 간단히 파우더(Powder)나 돌(Stone)이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일반 화학상식에 따르면 유황과 수은이 만나 화학결합을 했을 때 얻어지는 건 황화수은(주사)이다. 이것은 물론 현자의 돌이 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연금술사들이 수은과 유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상 연금술사들의 수은과 유황은 통속적인 의미의 수은과 유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또는 ‘이상적인’ 수은과 유황을 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연금술사들은 고도의 상징과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비밀언어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비유적으로 ‘녹색언어’, 또는 ‘새들의 말’이라 하였다. 이 때문에 새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반인들은 연금술서에서 이해할 수 없고 해괴한 온갖 그림들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유황은 왕이나 태양으로, 수은은 왕비나 달 또는 사자로 상징되었다. 수은과 유황의 결합은 왕과 왕비가 성적 결합을 하는 모습이나 함께 목욕하는 장면으로 나타내었으며, 토막 난 시체는 하소(산화)과정을, 손과 발이 잘린 섬뜩한 그림은 금속 원소의 응결과 응고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연금술사들이 이렇게 모든 것을 의인화시켜 적극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한 것은 자연을 보는 그들의 관점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즉 연금술사들은 금속과 광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죽어가는, 영혼과 감정을 가진 일종의 생명체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들에게 화학반응은 금속과 여러 물질간의 생기론(生氣論)적인 상호작용으로 비쳤으며, 이 때문에 연금술 작업은 종종 농사를 짓는다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에 비유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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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현자의 돌에 결합해 있는 철학적인 유황과 철학적인 수은 (<화학의 즐거운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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