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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의 신비 [아누이야기] 1. 진리보다 더 나은 종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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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10,102회 작성일 16-06-05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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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757, Vote: 4, Date: 2001/10/10 01:54:00 , IP: 211.219.117.238
글 제 목 [아누이야기] 1. 진리보다 더 나은 종교는 없다
작 성 자 문성호



1895년



     


[C. W. 리드비터와 애니 베산트]



  씨네트는 리드비터의 놀라운 투시능력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리드비터는 1883년에 신지학협회에 가입한 인물로, 블라바츠키 여사와 함께 인도로 가서 마하트마라 불리는 존재들에게 훈련을 받고 영능력자가 되어 돌아와 영국 런던에 있는 씨네트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씨네트 역시 일찌감치 신지학협회에 가입해서 저술활동을 했던 사람인데, 인도에 있을 때 블라바츠키 여사를 만난 것이 신지학을 알게 된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리드비터는 씨네트의 집에서 씨네트와 씨네트의 아내, 그리고 신지학협회의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곧잘 그의 투시능력을 시범해 보이곤 했는데, 씨네트는 리드비터가 아주 작은 물질을 크게 확대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씨네트는 어느 날 리드비터에게 물질의 원자를 볼 수 있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리드비터는 기꺼이 시도해보겠다고 대답했으며, 씨네트는 금을 시험 대상으로 해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금을 투시해 본 리드비터는 금의 원자구조가 너무 복잡해서 묘사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씨네트는 그 이유가 금이 높은 원자량을 가진 무거운 원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이번에는 훨씬 가벼운 원소를 다시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수소였는데, 리드비터는 수소가 금에 비해 훨씬 그 원자구조가 단순하며, 따라서 쉽게 묘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지학협회 내에서 오컬트화학으로 알려진 원자의 구조에 대한 초과학적 연구의 시작입니다. 얼마 후에는 애니 베산트라는 신지학협회의 여성회원이 리드비터와 동일한 능력을 사용하여 이 연구에 동참하였으며, 질소와 산소를 비롯한 다른 모든 원소들로 그들의 조사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원자에 대한 과학의 탐구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과학계에도 오컬트화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편, 다양한 원소들을 조사함에 따라 모든 물질의 원소가 동일한 최소단위의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것이 바로 아누입니다. 원자 그 자체는 아누들이 모여서 된 매우 복잡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물질은 아누라는 작은 입자로 귀결이 된다는 것이 오컬트화학의 연구결과입니다. 이것은 다소 놀라운 결론인데, 왜냐하면 그 당시는 아직 원자의 구조를 다루는 핵물리학이나 양자역학, 소립자물리학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1. 진리보다 더 나은 종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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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 여사]



고대 지혜의 부활 


  그럼 리드비터와 애니 베산트, 씨네트와 블라바츠키 등이 활동했던 신지학협회는 어떤 단체였을까요? 아무래도 아누와 오컬트화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신지학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알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지학은 한 마디로 블라봐츠키 여사가 미국의 올코트 대령, 그리고 윌리엄 젓지와 함께 세운 고대지혜의 부흥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과거에 없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비의적(秘儀的)으로 보존되어 왔던 지혜와 지식을 계승하고 체계화시켜 대중적으로 보급한 것이 근대 신지학운동입니다. 

  신지학이라는 명칭은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철학자들로부터 따왔는데, 3세기경 암모니우스 사카스와 그의 제자들이 ‘절충주의 신지학 체계(Eclectic theosophical system)’를 세운 것이 그 효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암모니우스는 기독교 신자인 양친 밑에서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독단적인 기독교에 반대하고 신플라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역시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등이 그의 제자로, 신플라톤학파의 형성은 절충주의 신지학 체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절충주의는 ‘제설(諸說)절충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명칭은 불교라든가 베단타, 조로아스터, 오르페우스, 유대교, 기독교 등 다양한 철학과 종교의 교의로부터 하나의 조화있는 체계를 추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데서 연유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화가 제 종교의 단순한 섞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학파의 다양한 교의가 결국은 같은 뿌리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디오게네스(B.C.412?~B.C.323)에 따르면 신지학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초기의 사제였던 포트-아문에서 그 체계가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포트-아문이라는 말은 ‘아문(Amun)’에게 헌신한 자를 의미하는데, 아문은 콥트어로 지혜의 신에 해당합니다. 결국 이런 주장들은 신지학이라는 명칭에 중점을 두었을 때 논란이 되는 것이고, 지혜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훨씬 더 먼 옛날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운 견해일 것입니다. 


보편적 동포애의 실현 


  그러므로 신지학파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각 종교의 창시자들이 여러 종교적 체계를 확립하기 이전 고대에는 모든 종교와 철학이 일체였다는 인식아래, 이 영원의 진리를 기반으로 하는 일반적인 윤리체계 하에 모든 종교와 종파, 사람들을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근대 신지학의 목표도 첫째가 인종과 피부색, 성, 계층, 신앙 등을 차별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동포애를 구현하는 것이며, 그 다음에 고대의 성전과 문헌을 포함한 비교종교학과 철학, 과학의 연구를 진작시키는 일, 그리고 감추어져 있는 자연의 신비와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잠재능력을 탐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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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한 사원]



신성한 지혜 


  따라서 모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신지학이기도 합니다. 신지학은 인간 및 우주의 본질과 구조, 그리고 그 탄생과 진화에 대한 지식이며, 영혼과 사후세계, 윤회, 그리고 카르마에 대한 지식이고, 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능력들과 그 법칙에 대한 지식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신지학은 과학이기도 합니다. 신지학이라는 명칭에 ‘신’이 포함되어 있고, 신지학이 ‘신성한 지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라는 인상을 갖기 쉽지만, 신지학은 결코 과학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지학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관통하는 ‘과학중의 과학’이라고 신지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으며, 단지 신지학이 통상적인 의미의 과학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 신지학이 비가시 영역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 둘째 물질적 도구에 주로 의존하는 과학과 달리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인식능력을 최대한 계발하여 활용하고자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물론 현대과학이 이룩한 눈부신 기술적 성과는 찬탄할만합니다. 그러나 만약 자연이 가시적인 영역과 비가시적인 영역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데, 우리가 직접 관측하거나 검출할 수 없다고 하여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제외시킨다면 그것은 완전한 과학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들이 경험하거나 가정한 계시에만 의존하여 사물과 사물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무시하는 종교라면, 그것 역시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발전과 진보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신지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지학은 과학적인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근대신지학의 바이블이자 블라바츠키 여사 최대의 역작인 『씨크릿 독트린』의 앞장에는 ‘과학, 종교, 철학의 통합’이라는 표어가 부제로 달려있으며, 『비교』에 앞서 나왔던 『이시스 언베일드』에도 ‘고대 및 현대의 과학과 신학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는 표제가 붙은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신지학은 『신지학의 대해』라는 제목의 신지학 서적도 있듯이 광대한 지식의 거대한 바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신지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지학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분야에서부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분야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근대 신지학의 공동 설립자인 윌리엄 젓지도 “신지학은 지각을 가진 존재들이 진화해 나갈 때 그 진화의 영역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까지 전 영역에 펼쳐져 있는 지식의 바다이다. 이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가장 위대한 지력을 가진 자라도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가장자리는 충분히 얕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지학은 육체적인 삶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일상적인 생활을 무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더 강조하여 그러한 생활 속에서 영적인 가르침을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신지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실로 광범위합니다. 방금 신지학이 접근하기 어렵고 난해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이 바다의 깊은 곳은 우리가 평생 공부해도 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방대한 지식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 역시 신지학이라는 망망대해의 한쪽 작은 해변만을 걸어보았을 뿐이고, 이 바다를 항해하고 나서 바다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피상적으로 보기만 해도 신지학이란 바다의 깊이와 규모에 대해서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더욱이 그 지식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인 탐구나 철학적인 사색 등, 이른바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지식들이 태반입니다. 


마하트마의 존재 


  그러면 이런 지식들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해서 발견한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지학 지식의 경로는 시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그 하나는 근대 신지학협회가 설립된 이후 신지학 구성원들의 탐구와 노력에 의해 얻어진 지식들로, 이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갱신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가 속해 있는 이 우주변방의 대략적인 진화도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식이 이미 체계가 갖춰져 있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전해진 것인데, 이러한 지식은 전세계적으로 특정한 어떤 곳에서 일시적으로 잊혀진 적은 있었을지라도 언제나 인류에게 알려져 왔다고 합니다. 어느 경로든 신지학을 접하면서 우리가 인식해야 할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하트마라는 위대한 지성의 존재입니다. 

  세상에는 신의 완전한 계획을 파악하고 있는 고도로 진화된 사람들이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당시 진보된 여러 나라에 퍼져 있었으며, 그리고 그들에게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와 문명의 요람기와 함께 하였고, 고대문명이 흥망성쇠의 주기에 따라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대재앙이 건축과 예술, 종교, 철학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을 볼 때마다 지식과 기록을 후대에 보전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처럼 고도로 진화된 사람들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신지학의 가르침 역시 그러한 인물들의 영감을 받아 소수의 제자들이 서양세계에 전했던 지혜의 종교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류의 스승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 있으며 마하트마는 그 중의 하나의 이름일 뿐입니다. 즉 그들은 이니시에이트(입문자)이자 아뎁트, 마기, 사제, 또는 동방의 왕으로도 불리었으며, 때로는 현자나 마스터로 호칭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어 위대한 단계에까지 올랐지만, 한때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진화과정을 거친 존재들입니다. 마하트마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본질은 영혼이라고 신지학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연은 영혼의 경험과 진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에는 인간의 지성이 동물보다 뛰어나듯이 인간의 지성보다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있기 마련이며, 마하트마란 그러한 뛰어난 지성을 가진, 진화의 도상에서 인간보다 앞서나간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곁에 있으면서 인류의 진화과정을 끊임없이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친구이고 형제입니다. 신지학협회에서도 마하트마란 용어를 채택하기 전까지는 이 앞선 존재들을 형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앞선 형제들은 자신들보다 덜 진화된 존재들의 진화 과정을 끊임없이 돌보아 주고, 수많은 세월을 두고 숱한 시련과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보전해 왔으며, 주기의 법칙이 허용할 때에는 인류를 위하여 그 지식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의 형제단을 이루고 있으며, 누가 어디에 있던 서로가 서로를 다 알고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그들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고, 사회의 조직이나 도덕의 수준, 혹은 국가들의 발전 정도가 허락할 때마다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들이 공공연히 나타나 사방에 알려지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신으로 숭배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악마로 몰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사이에 나타난 경우 몇몇은 인류의 지배자로, 몇몇은 스승으로, 또 몇몇은 위대한 철학자나 종교가, 예술가로서 활동하였는데, 한편 아직도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감추어져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바로 근대 신지학의 설립에도 마하트마들이 깊숙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마하트마 중의 한 명인 모리아 대사가 블라바츠키 여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세기 중엽인 1851년의 일이었습니다. 


어린 헬레나 


  당시 블라바츠키 여사는 스무 살로 런던에 있었는데, 열일곱에 조국 러시아를 떠나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던 중 런던에 도착한지 하루만의 일이었습니다. 블라바츠키는 거리에서 몇 명의 인도 왕자들과 함께 지나가던 키가 큰 힌두인을 보았는데, 그를 보자마자 과거에 그녀가 아스트랄 형체로 보아왔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 말은 비록 블라바츠키 여사가 직접 모리아 대사를 육체와 육체로 마주친 것은 런던에서의 일이 처음일지라도, 과거에 비물질적인 방법으로 그를 본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블라바츠키는 어려서부터 특별한 아이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령으로서 장군의 아들이었고, 어머니 헬레나 파데예프는 유명한 소설가였습니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공주였는데, 식물학자이자 작가로서도 명성이 높았습니다. 헬레나, 즉 블라바츠키는 태어났을 때 너무 약해서 살아남을 것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죄를 지닌 채 죽으면 안 되므로 태어나자마자 세례식을 거행했는데, 세례식을 집행하던 사제의 예복에 불길이 붙는 사건이 발생하여 여러 사람이 화상을 당하는 불길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헬레나가 11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는데, 헬레나가 다른 여성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며,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크게 걱정하였습니다. 어머니는 헬레나에게 닥칠 불행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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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파데예프]

  헬레나는 총명하고 책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심령적 능력을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종종 그런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오래된 과거의 환상을 보는 등 여하간 온갖 신비로운 일들로 가득 찼던 모양입니다. 

  성격도 다른 아이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풍부한 상상력과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 뛰어난 감수성, 그리고 자유와 독립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다른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 그녀는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이었으며, 고집이 세고 모든 일에 도전적이었습니다. 

  헬레나가 열 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게 된 것도 가정교사가 그녀의 반골기질 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결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놀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정교사가 중년의 니키포 블라바츠키조차도 그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자, 헬레나는 사흘만에 그에게 청혼하였다가 결국 실제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결혼이 결코 행복할 리도 없었고,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뿐더러 한 남자를 평생 주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헬레나는 처하게 된 것입니다. 불과 수개월만에 헬레나는 가정에서 도망쳐, 아버지가 부쳐주는 돈으로 터키와 이집트, 그리스, 동부 유럽 등지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대사들과의 만남 


  블라바츠키 여사는 어릴 때 위기의 순간마다 찾아와 자신을 구해주는 아스트랄 형체를 종종 보곤 했는데, 바로 그가 모리아 대사였던 겁니다. 블라바츠키는 이 아스트랄 형체를 수호천사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모리아 대사를 보았을 때 블라바츠키는 곧장 그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대사가 그녀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블라바츠키는 그가 지나가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블라바츠키가 전날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기 위해 홀로 하이드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을 때 모리아 대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모리아 대사는 인간의 내면 계발과 인류를 위한 학회의 결성에 관해 설명하면서 블라바츠키가 창립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블라바츠키가 겪어야 할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서도 말해주었고, 이 중요한 임무의 수행을 위해 3년간 티벳에 가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도 말해주었습니다. 블라바츠키는 곧 그 제의를 받아들여 런던을 떠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블라바츠키 여사는 티벳으로 가서 대사와 함께 3년을 지냅니다. 그 후 인도와 유럽을 거쳐 러시아로 돌아온 블라바츠키는 2년 정도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다시 여동생과 함께 조부모가 있는 코카서스 지방으로 떠납니다. 이 기간 동안에 과거 여행의 후유증으로 중병을 앓기도 했는데, 그녀의 심령 능력은 더욱 향상되어 이제는 그 힘들을 완전히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끔 되었습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1865년에 다시 러시아를 떠나 발칸 반도와 그리스, 이집트, 시리아,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였습니다. 이때 가족들은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블라바츠키의 생사를 알지 못하여 크게 근심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죽었다고 포기하는 순간 그녀의 이모가 쿠트후미라고 부르는 대사로부터 헬레나의 편지를 전달받습니다. 쿠트후미 대사는 편지를 전달하자마자 이모의 눈앞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 기독교를 믿는 이모도 마하트마의 존재만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1867년에서 1870년까지 티베트에 있었으며, 거기서 밀교의 역량을 완성하고 그녀가 말하는 ‘심리적-육체적 약점’을 청산하였는데, 이것은 그녀가 부정적 영매의 흔적을 말끔히 없앴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이집트와 시리아, 콘스탄티노플 등지를 돌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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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 대사와 듀알컬 대사가 그림에 묘사된 티벳의 라빈 계곡]



신지학회의 설립 


  1873년에 블라바츠키 여사는 뉴욕으로 가라는 대사의 지시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이때 마흔 두 살의 블라바츠키 여사는 영적, 오컬트적 능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마하트마들은 그녀야말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마하트마들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스러운 지혜 ‘Theosophia’를 새롭게 세상에 알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각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검증하고 확인한 축적된 지혜’이자 진리의 나무로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나무의 가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1874년에 헨리 올코트 대령을 만나게 됩니다. 올코트는 남북전쟁에서 대령까지 진급하였고, 링컨 대통령 암살사건의 수사책임자로도 이름이 알려졌으며, 블라바츠키를 만날 당시에는 뉴욕에서 법조계 일을 하면서 동시에 언론인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강신술’이 사람들 사이에 매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는데, 이러한 심령주의는 교조적인 신앙과 다윈의 진화론 같은 물질주의에 대한 반발이 그 부분적인 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철학적인 기반이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강신술을 심령현상의 실재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강신술의 오류와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영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블라바츠키와 여사와 올코트 대령은 유령의 육화현상으로 유명했던 버몬트의 치텐덴이라는 곳에서 만나 곧 친구가 됩니다. 모든 일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냉철하게 접근했던 올코트 대령은 블라바츠키를 통해 그가 갖고 있던 심령주의나 동양의 비의주의(esotericism)에 대한 견해에 일대 변화를 일으킵니다. 1875년에는 올코트 대령의 소개로 젊은 아일랜드계 변호사인 윌리암 콴 저지가 블라바츠키와 만나게되고, 이윽고 이들 세 사람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에 관한 지식을 집대성하고 확산시키기 위하여’ 이에 관심을 가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협회를 설립합니다. 그들은 이 협회를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명칭을 따라서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라고 명명하고, 올코트 대령이 회장으로, 그리고 블라바츠키 여사를 간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이 초기 모임의 회원 중에는 토마스 에디슨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동양의 여러 종교와 신비주의, 현대과학, 미국 심령주의 등을 섭렵한 블라바츠키는 곧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시스 언베일드』를 집필하여 신지학의 기본을 펼쳐 보였습니다. 『이시스 언베일드』는 1877년 뉴욕에서 출판되어 성공을 거두었으며, 신지학 운동은 지지와 반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급속히 전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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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바츠키 여사와 올코트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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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콴 저지]




인도와 유럽으로 


  1878년에 블라바츠키 여사와 올코트 대령은 미국내 신지학협회 일을 윌리엄 저지에게 일임하고 인도로 갑니다. 올코트는 강연활동을 하며 곳곳에 신지학회 지부를 창설하였으며, 블라바츠키 여사 역시 명사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인도로 건너가자마자 마하트마들의 인도로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신문의 편집자이자 심령주의를 신봉해 왔던 씨네트와 교류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씨네트는 마하트마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이 편지들은 나중에 『씨네트에게 보낸 마하트마의 편지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1883년에 씨네트가 펴낸 『비전불교』의 바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1879년에는 봄베이에서 『신지학자(The Theosophist)』라는 정기간행물이 발간되었는데, 초창기의 원고들은 마하트마들이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1880년에 블라바츠키 여사와 올코트 대령은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을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특히 올코트 대령은 그후로도 수 차례 실론을 방문하며 불교의 중흥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쓰이고 있는 불교깃발도 올코트가 실론의 고승을 도와 디자인한 것입니다. 

  한편 신지학 협회는 1882년에 마드라스 근교의 아디아르로 이전하였으며, 이곳은 지금도 신지학 협회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884년에는 두 사람이 아디아르를 떠나있는 동안 영국심령학회와 블라바츠키 여사의 하인이었던 쿨롱 부부의 중상모략으로 블라바츠키의 명예에 커다란 상처를 주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올코트 대령과도 사이가 멀어지고 건강까지 악화된 블라바츠키 여사는 1885년에 유럽으로 떠납니다. 독일을 거쳐 런던으로 간 블라바츠키 여사는 그러나 다시 한 번 정열을 불태워 『이시스 언베일드』를 뛰어넘는 필생의 대작인 『씨크릿 독트린』을 1888년에 발표하고 이어 『신지학의 열쇠』, 『침묵의 음성』등을 출판했으며 새로운 신지학 잡지인 『루시퍼』를 창간하는 등 끊임없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씨크릿 독트린』 역시 『이시스 언베일드』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1891년 블라바츠키가 숨을 거두기까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를 비롯한 많은 지성인들이 런던에 있는 그녀의 사랑방에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후에 올코트 대령의 뒤를 이어 제2대 신지학협회 회장에 취임하게 될 애니 베산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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