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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 [천계] 두 번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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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364회 작성일 16-08-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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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778, Vote: 17, Date: 2005/02/22 13:56:27 , IP: 220.93.126.13
글 제 목 [천계] 두 번째 하늘
작 성 자 문성호




두 번째 하늘(여섯 번째 하위계) 


이 하위부분의 주요 특징은 인간의 모습을 한 종교적인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헌신과 아스트럴계의 두 번째 하위계에서 나타나는 종교적인 감정 사이의 차이는 전자가 순수하게 비이기적(헌신의 결과가 자신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느끼는 것)이지만, 후자는 항상 그것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으려는 희망과 욕망이 있다는 데에 있다. 두 번째 아스트럴 하위계 상에서 변함없이 작용하는 종교적인 감정은 이기적인 거래의 요소를 담고 있지만, 사람을 천계의 이 여섯 번째 하위계로 올리는 헌신은 그러한 오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반면, 본질적으로 개인적 신성의 지속적인 숭배로 구성된 헌신의 단계는 신성을 위해서 일정한 일을 수행하는 때 표출되는 더 높은 상위의 형태와 조심스럽게 구분되어야 한다. 이 하위계에서 관찰되는 몇 가지 예들은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그 차이를 보여 줄 것이다. 
이 수준에서 정신적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매우 많은 실재들은 동양 종교에서 나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순수하지만, 비교적 비합리적이고 비지성적으로 헌신하는 자들도 포함된다. 에기에서는 쉬바의 몇몇 추종자들와 아울러 끄리쉬나와 다른 아바타들로 나타나는 비쉬누의 경배자들이 발견되는데, 이들은 자기가 직접 짠 상념의 고치 속에 자신의 신만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상에서 그가 사랑했던 숭배자에게서 애정을 느낀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인류는 안중에도 없다. 예를 들면 비쉬누 숭배자들은 생전에 제사드렸던 비슈누의 상과 똑같은 대상에 대한 황홀한 숭배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다. 

이 계의 가장 특징적인 몇 가지 예는 여성에게서 발견될 수 있다. 그들은 그곳에 거주하는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외에 자신의 남편을 신성한 존재로 찬미했던 인도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또한 애기 끄리쉬나가 자기 애기들과 같이 놀고 있다고 상상했는데, 애기들은 완전한 사람이었고 사실적이었지만, 애기 끄리쉬나는 도금이 된 청색 나무 인형의 모습으로 재생되었다. 끄리쉬나는 또한 피리를 부는 여성적인 젊은 남자의 모습으로 그녀의 하늘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는 이 이중적인 현현을 조금도 혼란스러워 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또다른 여성은 쉬바의 숭배자였는데, 이 신을 자기 남편과 혼동해서 남편을 쉬바의 현현으로 보았는데, 늘 전자가 후자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불교도들도 또한 이 하위계에서 발견되는데, 부처를 위대한 스승으로써보다는 숭배의 대상으로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숭상하는 덜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기독교도 또한 이 계의 거주자들 중에 많이 분포해 있었다. 비지성적인 헌신의 예로 한편으로는 로마 카톨릭의 문맹 농부와 다른 한편으로는 구세군의 성실하고 진지한 ‘병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설명한 사람들과 흡사한 결과를 낳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도 자신들의 그리스도나 성모 상에 대한 관조 상태에 싸여 있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의 농부는 동정녀 마리아에 열렬한 숭배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그는 이것을 티치아노의 ‘성모승천Assumption’ 이후 달 위에 서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말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중세의 어떤 수사는 십자가에 못박힌 자신의 그리스도를 황홀하게 관조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 상에 나있는 상처에서 피가 떨어지는 것을 보자, 사모와 동정의 강도는 그 자신의 심체 위에 성흔이 만들어지는 정도였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그리스도가 십자기에 못 박히는 슬픈 이야기를 잊은 듯했다. 투명한 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는 상태에서, 왕관을 쓴 그리스도의 주변을 그의 부인과 가족이 둘러싸고 있었고, 거대한 숭배자 무리와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그를 생각했다. 친척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매우 깊었지만 그가 사람의 모습과 교회의 창에서 종종 보이는 깃발 장식 램프 상 사이를 늘 변화무쌍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자신을 그릴 정도로 신성에 대한 이해가 물질적이었다. 그의 상념는 그리스도의 숭배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 흥미로운 경우는 19이나 20 살 경에 죽은 스페인의 수녀이다. 자신의 하늘에서 그녀는 지상에서 그리스도가 살았던 당시로 돌아가서 복음서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와 동행하고 십자가 처형을 받은 뒤에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를 돌보는 것으로 자신을 상상했다. 자연히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한 장면과 의복의 모습들은 부정확했다. 구세주와 사도들은 스페인 농부의 의복을 입고 있었으며, 예루살렘 주변의 언덕들은 포도원들로 뒤덮힌 거대한 산맥들이었으며, 올리브 나무들에는 회색의 스페인 이끼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신앙을 위해 결국 순교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상을 그렸지만, 그녀는 몹시 좋아했던 이런 생을 거듭해서 살았을 뿐이다. 

어느 아이의 하늘에서의 삶은 기묘하고 귀엽고 깜찍한 예로 이 하위계에 대한 목록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일곱 살에 죽었는데, 아일랜드 간호사가 이 하위 세계에서 말해 준 종교적인 이야기를 천계에서 재생하는 데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꼬마 예수와 함께 놀면서 어린 그리스도가 진흙 참새를 만드는 것을 돕고 그의 권능으로 그것을 살려서 날려 보내는 모습을 제일 좋아했다. 

우리가 말해 왔듯이 맹목적이고 비합리적 헌신이 위대한 높은 영적 경지로 그 신봉자들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완전히 행복하고 완전히 만족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은 것은 항상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미래 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단순한 헌신은 결코 지성을 발전시키지는 못하지만, 더 높은 형태의 헌신을 위한 능력을 증가시키며, 대부분 삶의 정화로 이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설명해 왔던 것처럼 하늘의 삶을 살고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비록 영적인 발전의 길에서 신속히 진보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최소한 많은 위험에서 보호받게 된다. 왜냐하면 다음 탄생에서 그의 헌신적인 열망 때문에 더 큰 죄에 빠지거나, 단순히 세속의 탐욕, 야망, 그리고 방탕에서 벗어나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위계의 탐구는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라’는 성 베드로의 충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게 한다. 

그러한 이상한 결과들은 믿음의 조잡한 형태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오래지 않은 과거의 유럽에서 고통스럽게도 일반적이었던 매우 조잡한 유물론에 의해 어떠한 결과가 야기되었는지 보여 준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몇 가지 경우에 유물론자는 지상에 있는 동안 사후의 조건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늘의 세계에서 의식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신지학의 열쇠에서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한 창시자가 ‘유물론자’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제한적인 의미에서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책에서 그들에게는 사후의 삶이 전혀 가능하지 않지만, 이에 반해 일반적인 유물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스트럴계에서 많이 만날 수 있고, 분명히 무의식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밤에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적인 문제라고 그녀도 단언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아스트럴의 가장 높은 하위계에서 우리의 한 성원이 발견한 어느 저명한 유물론자는 거기서 자신의 책에 둘러싸여서 지구에서 했던 것처럼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묻자, 그는 지상에 있는 동안 그가 유지해 왔던 이론이 저항할 수 없는 사실의 논리에 의해 논박당한 것을 기꺼이 인정했지만, 그의 불가지론적 경향들은 친구가 더 높은 멘탈계의 존재에 대해 자신에게 이야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성격에는 그 멘탈계에서만 완전한 결실을 볼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사후의 삶에 대한 전적인 불신이 그의 아스트럴 경험을 가로막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천계에서 내면의 더 높은 힘을 적절하게 규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이유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불신에 의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가 종교적 이상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으며, 그것이 강력한 헌신의 에너지를 내면에서 불러냈을 것이고 그 결과를 그는 이제 거두어드릴 것이다.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은 상실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의 가족에 대한 비이기적인 깊은 애정, 그의 진지하고 지칠 줄 모르는 인류애적 노력 등은 그 효과를 이뤄냈음에 틀림없고, 멘탈계 상에서만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분출시켰다. 

훨씬 더 최근에 관찰된 또 다른 예는 사후에 아스트럴계에서 깨어날 때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상상하여 불쾌한 꿈만 경험했던 유물론자의 경우였다.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아스트럴계에 작용을 가할 수 있는 그의 오랜 친구의 아들이 있었다. 친구의 아들은 그를 찾아서 몇 가지 도움을 주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 젊은 이를 자기 꿈 속의 한 인물로만 상상했다. 그러나 그 메신저의 탄생 전에 일어났던 문제에 대해 그의 오랜 친구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고서 자기가 있는 그 계의 현실을 확신했고, 즉시 그에 대한 가능한 모든 정보의 수집을 매우 열망하게 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그에게 주어지고 있는 도구는 틀림없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앞에 놓인 하늘의 삶뿐만 아니라 지상의 다음 환생도 크게 수정할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이 두 사람과 다른 많은 예들에 대해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물리계 상에서의 경험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던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 법칙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자연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아래에서 늘 발견한다. 만약 불이 붙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한 사람이 자기 손을 화염 속에 집어넣으면, 그는 자기 잘못을 재빨리 알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실존에 대한 불신은 자연의 사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죽은 뒤에서야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위에서 언급된 설명에서 블라바츠키 여사가 말한 종류의 유물론은 그래서 보통의 불가지론보다 훨씬 더 조잡하고 더 공격적이었을 것이다. 즉 그러한 견해를 지닌 사람은 멘탈계의 삶에 요구되는 어떤 자질을 스스로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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