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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블라바츠키, 포웰)

비경 秘經 [SD] Introductor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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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408회 작성일 16-06-0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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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718, Vote: 3, Date: 2002/01/19 21:56:00 , IP: 211.116.205.231
글 제 목 [SD]Introductory 
작 성 자 sirius (cosmic1004@hanmail.net)
홈페이지 http://cowhiterose.net (Visit : 51)
이 자료는 신지학출판사(www.theosophy.co.kr)에서 출판한 비경(secret doctrine)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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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씨크릿 독트린」은 논문도 아니고, 막연한 이론도 아니다. 19세기에 공표해도 좋은 모든 사항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에, 머리말에서 밝히고자 하는 사실은 한 권 정도 분량의 책으로 소개되어야 했다. 이것은 단순한 논문이 아니라 사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이 실재한다는 진정함과 확실성, 혹은 적어도 그의 개연성이 먼저 증명되지 않으면, 제한된 곳으로부터 풀려 나온 비밀의 가르침의 이러한 부분조차, 이 책에서 말한다 해도 유해무익할 것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것은 여러 가지의 권위에 의해 보증돼 있다는 것을 밝혀두려 한다. 즉, 고대의 철학자들과 고전, 그리고 매우 박학한 교부(敎父)들의 권위에 의한 보증인 것이다. 교부들 중 몇몇은 이와 같은 가르침을 공부하고, 그에 관한 저작을 보고 읽어서 알게 되었고 또 다른 교부들은 고대의 비의를 통해 개인적으로 비전에 입문함으로서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역사적으로 믿고 납득할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하고, 능력과 바른 판단과 진실함을 인정하는 유명한 저자들의 책에서 인용하며, 또 비밀의 기예(技藝)와 과학의 신비를 밝힌다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불가사의한 고대의 형(形)을 일반사람에게 부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신비과학과 예술분야에 유명한 몇 사람의 이름을 거론해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목적을 이루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매순간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우리들의 계획을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을 이야기 해보겠다. 

탐사하기에 여건이 좋은 나라로부터 온 여행자가, 갑자기 미지의 땅 경계에 도달하여 장애물을 만났다. 거기에는 도저히 뚫고 지나갈 수가 없는 커다란 바위의 장벽이 앞을 바라볼 수 없도록 막아서 있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탐험 계획이 좌절됐다고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진입하는 길은 막혀져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신비의 영역을 방문할 수가 없다면, 갈 수 있는 한 가까운 곳에서부터 조사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앞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의 정상에 오르기만 한다면, 그가 여기까지 거쳐오면서 봐왔던 풍경에 대한 지식에 도움을 얻어, 절벽너머를 볼 수 있는 일반적이면서 꽤 정확한 생각을 얻어낼 수가 있다. 일단 그 봉우리에 오르기만 하면 지금까지 노력한 덕택으로, 안개와 구름을 끼고 있는 낭떠러지의 경계를 넘어선 곳과 지금은 어렴풋이 보이는 곳, 즉 방금 지나서 왔던 아래쪽을 비교해 보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경치를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원전에 나와있는 태고이전의 신비에 관해 좀 더 정확한 이해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모든 것을 「씨크릿 독트린」 두 권 안에 다 쓰지는 못한다. 그러나 독자가 인내력을 가지고 유럽의 신앙과 교의의 현황을 훑어보면서 서력기원의 직전, 직후의 시대에 관해서 역사로서 알려져 있는 일을 그것과 비교해 체크해보면, 「씨크릿 독트린」제 3권에서는 모두가 명백해질 것이다. 

「씨크릿 독트린」제 3권의 개요를 간단히 언급하면, 역사에서 알려진 모든 주요한 아데프트들에 대한 것과 비의(秘儀)의 타락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그 타락이후, 비전과 신성과학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지식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체계적으로 제거되어 완전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때부터, 신성과학의 가르침은 불행히도 비밀(오컬트)로 되었고, 존경할 만은 하지만 헤르메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되었으며, 그로 인해 너무나도 종종 마법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오컬티즘은 우리 시대 이전 몇 세기 동안은 신비가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것이나, 크리스트교의 초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마법이라기보다는 흑마술에 가까운 오컬트 기술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크리스트교 초기의 시대에는, 이교도들의 정신적, 지적 노력의 모든 흔적을 없애 버리려는 광신적 노력이 대단한 것이었고 열심히 행해져 왔으나, 그것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편협하고 옹졸한 어둠의 악마와 같은 영들은 크리스트교 이전시대에 쓰여진 모든 빛의 기록을 조직적으로 왜곡시켰다. 역사는 그 부정확한 기록들조차도, 전체에 공평한 빛을 던져주는데 필요할 만큼은 유지시켜 주었다. 자, 그럼 여기서 이점을 잠시 주목해 보자. 예수의 탄생의 해로 돼있는 서역 원년을 중심으로 해 1000년(기원전 500년∼기원 후 기원500년)에 모든 주의력을 모아보면(예수의 탄생의 시기가 역사적으로 바른 것인가 어떤가는 별개로 해두자), 이러한 일들은 미움을 받고 있었던 과거의 종교가 돌아오는 것, 혹은 힐끗 보이는 것조차 방해하려는 징조의 시초인 것이었다. 과거의 종교가 미움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은, "새로운 율법"으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트교에서 의도적으로 베일에 드리운 채 제시한 해석에 이들 과거의 종교가 너무도 강한 빛을 비추기 때문이었다. 

초기의 크리스트교 신부들이 인류의 기억에서 비교(秘敎)의 가르침을 말살해 버리려고 해왔던 노력은 그 아무리 초인적인 것이라도 모두 실패했다. 진리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구에서 고대 지혜의 발자취를 사라지게 하려는 노력과 고대의 지혜를 증명하는 목격자를 속박해 언론을 압박하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몇 천권, 어쩌면 몇 백만 권이 될지 모를 태워진 원고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그들의 너무나도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린 기념비적인 고대의 지혜가 새겨 넣어진 비문이나 그림의 상징들을... 초기 기독교 은자들이나 고행자들의 일단은 사막과 산, 계곡과 고원에 퍼져있는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파괴된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고대의 유물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신앙이 차용하고 빌어왔다는 증조가 있는 것은, 오벨리스크나 기둥이나 두루마기나 양피지에 적힌 고문서를 막론하고 찾아내는 대로 파괴하려고 애를 썼다. 이러한 역사를 인식한다면 과거의 기록이 왜 거의 남아있지 못했던가 알 수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크리스트교 초기시대와 중세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의 광신적인 악령은 처음부터 암흑과 무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양쪽 모두 아래와 같이 만들었다. 

"피로 물든 태양, 무덤과 같은 세상, 
무덤은 지옥, 그리고 지옥은 더욱 음울한 어둠!"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양편의 교의(敎義)는 칼로 위협해 개종자를 획득해왔다. 양편 다같이 하늘에 이를 정도로 많은 피해자들의 대 살육 위에 교회를 세운 것이다. 기원 1세기의 문턱에는 "이스라엘의 카르마"라 말하는 불길한 언어가 숙명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19세기의 입구를 넘어서면서 선지자는 쟈간나타(Jagannatha) 즉, 종교적 편협함과 유물주의라고 하는 커다란 마차 사이에서 후손들에 의해 교묘하게 날조된 역사, 고의로 왜곡시킨 사건들, 위대한 인물에 대한 모략들과 같은 우리의 인식 너머에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들을 식별하고 그에 대한 카르마를 지적할 것이다. 하나가 너무 많은 것을 받아들이면, 또 다른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 황금의 중심점을 유지하는 자, 그것의 영원한 정의를 믿는 자는 현명하다. "일 천의 종파에도 속하지 않은 훌륭한 연설을 한 자유사상가의 증인"인 파이지 디완(Faizi D w 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거의 행위를 용서받게 되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에는, 크리스트 교회의 먼지를 위하여, 카바의 죄는 용서받게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막스 뮐러 교수는 답한다. 

"이슬람의 죄는 크리스트교의 먼지만큼이나 가치가 없다. 부활의 날에, 회교도나 크리스트교도 모두는 그들 종교의 교의가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현세에서는 종교에 대하여 싸우지만, 유일의 진정한 종교는 신의 영에의 숭배라는 것을 천국에 가서는 깨우치게 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진리보다 나은 종교(법칙)는 없다.(THERE IS NO RELIGION (OR LAW) HIGHER THAN TRUTH)" -"SATYAT NASTI PARO DHARMAH"- 이것은 신지학 협회에 의해 채택된 버나레스의 마하라쟈의 모토이다. 
머리말에서 이미 말했던 것처럼 「씨크릿 독트린」은 원래 의도되었던 「이시스 언베일드」의 개정판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이시스 언베일드」의 해설서라 할 수 있다. 또한 초기작업부터 완전히 독립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시스 언베일드」를 이해하는데는 없어서는 안될 작품이다. 「이시스 언베일드」의 많은 내용들이 당시의 신지학도에게는 거의 이해되지 못했다. 「씨크릿 독트린」은 「이시스 언베일드」에서 풀지 않고 남겨둔 많은 문제들에, 특히 결코 이해되지 못했던 첫 장에 빛을 던져주게 될 것이다. 

「이시스 언베일드」에서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펼쳐졌던 여러 철학이나 멸망한 민족의 각각의 상징주의를 간략히 살펴보면서, 오컬티즘의 개관에서 대략적으로 훑어본 정도였다. 「씨크릿 독트린」에서는 우주 발생론이나 현재의 제 5 근원인종 이전의 4개의 근원인종의 진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두 권의 두꺼운 책은 「이시스 언베일드」의 제 1장에서만 언급되었던 내용들, 그리고 「이시스 언베일드」안에서 여러 곳으로 흐트러져 어렴풋이 비쳐주었던 내용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우주와 행성의 진화나 "아담의" 자손인 현재인류와 신비스러운 인종의 점진적인 발달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다루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태고의 과학에 대한 광범위한 영역의 연구를 시도할 수는 없다. 따라서, 비교철학의 어떤 신비를 해명한다고 말하는 현재의 시도에는, 진정 「이시스 언베일드」와는 관계가 없다. 여기서, 이 일을 한 예로 설명하게 해주었으면 생각한다. 
「이시스 언베일드」의 제 1권은 "어느 오래된 책"에 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책은 너무나 오래된 것이어서 현대의 골동품연구가들은 그 책의 페이지들이 어느 때의 것인지를 몰라 한참 생각에 빠졌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에 써져있는 재료의 성질에 관해서도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현존하는 원본은 단지 그 책 한 권뿐이다. 오컬트 학문에서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의 문서 「시프라 드제니우타(the Siphrah Dzeniouta, 숨겨진 신비의 서)」는 그 오래된 책이 이미 문학적 유적으로 빛을 발할 때에 그것에 기초해서 편집되었던 것이다. 그 책의 도해의 하나는, 빛이 원의 형태로 점차적으로 호를 그리며 퍼져나가는 것과 같이 아담으로부터 신성의 정수가 발산하는 것을 표현했다. 원주의 최고점에 이르면 말로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이 또 다시 지상으로 도래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더 높은 형태의 인류를 이루어낼 것이다. 그러한 영광이 우리들의 지구에 차츰 차츰 가까워져 오면, 그로 인한 발산은 점점 어두워질 것이다. 결국, 그 영광이 땅에 닿았을 때는 밤처럼 어둡게 된다." 

그의 "아주 오래된 책"이란 몇 권의 「기우 티(Kiu-ti)」(편주7)가 기초가 되는 원전이다. 「기우 티」와 「숨겨진 신비의 서」뿐만 아니라 유태의 카발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선조 아브라함의 저작이라 한 「세퍼 예트지라(Sepher Jezirah)」, 또한 중국의 최고의 성전인 「서경(書經)」이나 이집트의 토트 헤르메스에 관한 신성한 책, 인도의 「푸라나」, 칼데아의 「수(數)의 서」 그리고 모세오경, 모두가 그 조그만 원전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제 5 근본인종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 아세아에서 빛의 자식들이 신성한 존재들로부터 비밀스런 사제들의 언어인 센자르어로 직접 불러 주는 것을 받아 적은 것이라 한다. 그 당시는 센자르어가 각국의 비전가들에게 알려진 시대였고, 톨텍의 선조들은 그 언어를 잃어버린 아틀란티스의 주민처럼 쉽게 이해했다. 아틀란티스인은 제 3근원인종의 성인들인 마누쉬들로부터 그 말을 전수 받았다. 또한 마누쉬들은 제 1, 2 근원인종의 데바들로부터 직접 배운 것이다. 「이시스 언베일드」에 있는 앞서 말한 "도해"는 바이바스바타 만반타라(Vaivasvata Manvantara), 즉 "라운드"에 있어서의 이러한 인종 및 제 4근원인종, 제 5 근원인종의 진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각 라운드는 인류의 7주기의 유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4주기는 이미 거쳐 지나갔고, 지금 우리들은 5주기의 중간 지점에 거의 도달했다. 도해는 누구라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고, 우주의 처음부터 펼쳐진 것을 통틀어 포함하고 있다. 그 오래된 책은 우주의 진화를 기술하였고, 물질적 인간을 포함한 지구에서의 모든 것의 기원을 설명하였으며, 제 1 근원인종에서부터 제 5 근원인종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만,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영웅이자 개혁가였던 광휘의 "태양 신" 크리쉬나의 죽음의 때인 4991년 전 칼리유가(Kali-Yuga) 바로 전에 이 책은 끝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책이 존재한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책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책은 약 5000년 전인 암흑시대(칼리유가)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지금부터 대략 9년이 지나갈 즈음, 칼리유가의 대주기의 시초인 5000년의 주기가 끝나게 된다. 그때, 그 책(암흑시대에 관한 예언적 기록의 제 1권)에 포함되어있는 최후의 예언이 성취 될 것이다. 우리들은 긴 세월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은 새로운 주기의 여명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주기의 끝 무렵에는 인종들간의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정산될 것이다. 예언의 제2권은 붓다의 위대한 후계자 샹카라차리야(Sankaracharya)의 시대에 관한 것이다 . 

또 한가지의 중요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책은 유일한 원초인 보편적 지혜의 존재에 대한 일련의 증거 중에, 적어도 크리스트교도의 카발리스트와 그의 학도들에 있어서는 가장 으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비밀의 가르침은 부분적으로나마 몇 사람의 크리스트교의 교부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오리겐(Origen), 시네시우스(Synesius), 또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Clemens Alexandrinus)조차,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 플라톤 철학에 크리스트교의 베일을 덮어쓰고 있는 그노시스의 철학이 포함되기 전에는 그들 스스로 비전을 전수 받는 것은 순수한 역사적 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비밀의 가르침 중 어떤 것은(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바티칸에 보존되어, 그 이후 로마 교회에 의해 원래 기독교의 계획에 따라 꼴사나운 형태가 가미되어 비의(秘儀)의 일부로 되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현재는 처녀회태라고 부르는 저속한 형태의 도그마이다. 이것이 오컬티즘, 프리메이슨 또 일반적으로 이단적 신비주의에 대해 로마구교가 대박해를 가한 원인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는 역사의 마지막 전환점이었다. 말하자면, 서구에서 오래된 종교를 목졸라 죽이고, 그의 사체(死體)위에 쌓아올린 새로운 종교는 최대의 투쟁의 비극시대였다. 그때부터, 후세의 사람들은 "대홍수"나 에덴 동산을 넘어서서 태고를 알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그것이 비쳐지는 정도만 보여도 공정하든 불공정하든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강제적이고 냉혹하게 막기 시작했다. 모든 발행물은 봉쇄되었고, 그들의 손에 들어간 모든 기록은 파괴되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소멸되고 남은 기록들 중에는, 근원적인 가르침이 실재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남아있는 일부의 단편들은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지질적, 정치적 대변동을 견디어 살아남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질학적인 재난이나 정치적인 재난을 넘기고 남아있는 단편들은, 지금의 비밀의 지혜가 지난날 항상 끊임없이 흐르는 유일의 영원한 원천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 원천은 작은 하천(즉, 모든 나라와 국민이 믿고 있는 후세의 종교)이 상류부터 하류에 다다를 때까지 물을 대주는 근원인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부다로 시작해서 신 플라톤파와 그노시스파로 끝나는 이 시대는 영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편협한 신앙과 광신의 손에 의해 어둠이 드리우지 않았고, 빛의 흐름이 마지막까지 밝은 빛으로 한 점에 모였던 유일한 시대였다. 

이것은 유사 이래로 모여진 증거를 가지고 가장 오랜 옛날로부터 주어졌던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혀주는 것이다. 방법과 체계의 부족이라는 책임을 무릅쓰고, 취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일반 대중들은 비전을 전수 받은 시인이나 작가, 그리고 매 시대마다 예술을 통하여 비교(秘敎) 교의에 대한 것을 기록으로 보존하고자 했던 세계의 아데프트들의 노력을 알아야만 한다. 설령, 비교 교의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와 같은 철학이 실재한다는 지식을 인류의 기록 안에 보존하고자 했다. 만약에 과거의 비전가들이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1888년의 비전가들의 존재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불가능한 신화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와 같이 위대한 인물들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는 절과 장을 일러주지 않는다면 그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대홍수 이전과 이후의 예술에서 보여지는 유명한 거장들과 끊임없이 맥을 같이 해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은 구전되어 오고 반은 역사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오컬트와 힘에 관한 지식은 소설이 아니다. 그것들은 세상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것이다. 
  
따라서, 심각한 문학적 비판을 가하거나 저자의 명성에 좌우되어 책을 판단하며 으르렁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내용은 하나도 보지 않고 몸의 가장 약한 부분에 붙어 있는 치명적인 세균과 같은 회교 탁발승 문학 비평가들이라면, 과거이든 미래이든 나는 할 말이 없다. 또한 자기 자신들보다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모든 저자들의 신용을 떨어뜨림으로써, 일반대중의 주목을 끌어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그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거품을 물고 짖어대는 개와 같다) 정신나간 얼간이들(다행히도 그 수가 많지는 않다)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겠다. 그러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지학도」와 「에소테릭 부디즘」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가르침들이 모두 나에 의하여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끝내는 「이시스 언베일드」와 그 외 다른 책들을, 엘리파스 레비, 파라셀수스나, 불교나 바라문교에서 훔쳐 쓴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것은 레난이 그의 저서 「예수전」을 4 복음서에서 훔쳐 썼고, 또 막스 뮐러가 「동양의 성전집.」이나 그의 「독일의 일자리에서 한 토막」을 바라문이나 불타의 철학에서 훔쳐 쓴 도작인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고 우둔한 짓이다. 그러나, 나에게 줄곧 말해 오고있는 것들을 몽테뉴의 말을 빌어서, 일반대중과 「씨크릿 독트린」의 독자들에게 반복해 말할 수 있다. "여러분, 나는 꺾은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로 묶은 것 외에 내가 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만약에 하고자 한다면 그 묶은 끈을 버려도 좋다. 그래도 진실의 꽃다발에서 당신이 빼내어 버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단지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뿐이다. 

1권에 관한 이야기의 끝맺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짓겠다. 우주 발생론에 대한 것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서문으로서는 부적절한 주제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신중하게 숙고하기 위해 이미 말했던 것들을 또 한번 언급하게 될 것이다. 어느 독자를 막론하고 자신이 이미 배워온 것에 기초한 지식을 토대로 자기자신의 지식, 경험, 의식의 관점에서 이 책의 내용을 평가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늘 마음에 두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이 저작의 뒷부분에 속하게 돼있는 것들을 이 권에서 종종 말하게 되는데 말하자면 근대적 소산의 두뇌로 판단하며 이 책을 요정의 이야기로 보지 않게끔 하기 위해 그러한 내용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과거는 현재를 알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현재는 과거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현대의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야 하겠지만, 긴 시대와 역사의 증언은 매우 소수의 아주 직감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인상을 각인 시킬 수 없다. 그러나 정직하고 충실한 사람들은 수학적 증거를 내놓음으로써 현대의 회의적인 물질주의자에게 그들의 완고함과 편견을 증명한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얻을 수가 있다. 프랑스 학사원의 기록 보관소에는 회의론자를 위해, 어느 수학자에 의하여 대수적(代數的) 방법을 통해 발견되었던 유명한 확률의 법칙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의 사람이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그것이 참일 확률이 각각 5/6라면 그 사실이 참일 확률은 35/36가 될 것이다. 

즉, 그 사실이 참일 확률과 거짓일 확률은 35:1이 된다. 만약에 세 명이 이와 같은 확률에 동의하게 되면 확률은 215/216로 된다. 10명 모두의 1/2확률을 주게된다면 1023/1024로 된다. . . 
오컬티스트는 만족함으로써 더 이상의 설명을 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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