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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체 [멘탈체] 21. 데바찬: 그 기간과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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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3,923회 작성일 16-07-31 23:38

본문

 


제 21 장 

데바찬: 그 기간과 강도 




(* 표 2개는 삽입을 못하였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연옥과 천국을 만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여러 의식 상태 중 어느 것도 결코 영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한한 원인은 무한한 결과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물질계, 아스트럴계 그리고 멘탈계에서 각각 보내는 기간은 진화 정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원시인은 사후에 단지 몇 년만을 아스트럴계에 보내면서, 거의 물질계에만 산다. 그가 발전함에 따라 아스트럴계의 삶은 기간이 더 길어지고, 지성이 펼쳐짐에 따라 그는 또한 멘탈계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문명화된 인류의 평범한 사람은 물질계와 아스트럴계보다 멘탈계에 더 오랫동안 머무른다. 사실, 사람이 진화를 많이 하면 할수록 아스트럴계의 삶은 더 줄어들고 멘탈계의 삶은 더 길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화의 가장 초기의 단계를 제외하고는, 사람은 멘탈계에서 훨씬 더 많은 생애를 보내게 된다. 곧 상세히 살펴보겠지만, 정신적인 발달이 아주 미미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물질계와 멘탈계의 삶의 비율은 1 : 20 이상은 드물고, 꽤 발달한 사람의 경우에는 비율은 때때로 
1 : 30 정도 된다. 신비학도는 진정한 인간 즉 자아의 참된 집은 멘탈계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각각의 화신은―무한한 진리의 길로 가는 중―그의 경력에서 중요하더라도 일시적인 사건일 뿐이다. 

뒤에 나오는 표들은, 관련된 사람의 부류에 따라 아스트럴계, 멘탈계와 원인계에서 보내는 평균 기간과 더불어 물질계에 화신하는 사이의 기간에 대한 평균 시간을 나타낸다. 

신비학도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사회적인 계층(지위)에 의한 분류에 너무 자구字句에 얽매이거나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분류는 이해하기 쉽도록 간략하게 구분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의 사람이 “주정꾼과 쓸모 없는 사람”의 항목에 포함될 수도 있으며 또한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는 않을지라도 미숙한 노동자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등급 대신에 도덕적 및 멘탈적인 발달에 의한 분류 방법이 고안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우리가 채택한 사회적 지위에 의한 분류 방법만큼이나 많은 어려움이 있다. 

표1 

표2 

위의 숫자는 단지 평균치이며 각각의 평균치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개체화Individualisation의 방식에 따라 어떤 차이가 생기지만, 이러한 차이는 하위의 부류들에서는 비율이 훨씬 더 작다. 지성을 통하여 개체화된 사람은 위에서 언급된 두 기간 사이의 폭이 더 긴 경향이 있고, 반면에 다른 방법으로 개체화된 사람은 보다 짧은 간격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을 보다 충분히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젊어서 죽는 사람은 노년에 죽는 사람보다 각각의 화신 사이의 기간이 짧은 경향이 있지만 아스트럴계의 삶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아스트럴계의 삶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강한 감정들은 대부분은 물질계의 초기의 삶에서 생기는 반면에, 천계의 삶에 귀착되는 보다 영적인 에너지는 지상에서의 삶이 끝나거나 끝날 즈음까지 계속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데바찬에서 보내는 총시간은 지상에서의 삶에서 가지고 온 재료 혹은 내용에 달려 있다. 즉 멘탈 및 도덕적인 재능으로 차츰 완성될 수 있는 모든 것, 지상에서의 삶 동안에 형성된 모든 순수한 상념과 감정, 모든 지성적 및 도덕적 노력과 열망, 유용한 일에 대한 모든 기억 그리고 인간에 대한 봉사를 위한 계획이다. 아무리 미약하거나 혹은 짧은 기간일지라도, 이러한 일은 하나도 상실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기적인 동물적 정욕은 여기에 들어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표현할 수 있는 어떠한 질료도 천계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생에서의 악은, 비록 선을 크게 능가할지 모르지만, 극히 미약한 선의 결과가 표현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서 데바찬의 삶이 매우 짧겠지만, 가장 타락한 사람도 그가 의義에 대한 아주 미약한 열망, 즉 자비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데바찬의 삶을 반드시 가지는데, 그 기간 중에 선善의 씨앗은 어린 싹을 내고 선의 섬광閃光은 자그마한 불꽃으로 타오를 수도 있다. 

과거에,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하늘나라를 항상 생각하고 천국의 축복을 누릴 목적으로 그의 삶을 통제했을 때에, 데바찬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주 길었고 때때로 수천 년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 시대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훨씬 더 세상에 집중되고 하늘나라에 대하여 생각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라 그들의 데바찬의 삶은 단축되었다. 

이와 같이, 멘탈계의 천계와 원인계의 천계에서 보내는 시간은 멘탈체와 원인체에서 여러 번 발생한 상념의 양에 비례한다. 야심과 흥미, 사랑과 희망과 두려움과 함께 인성적인 자아에 속하는 모든 것은 하위 멘탈계 즉 형태 또는 형상의 세계에서 그 결실을 이룬다. 상위의 고차원적인 마음. 즉 추상적이고 비인성적인 사고 작용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은 원인계의 하부계들, 즉 무형의 세계에서 성취되어진다. 위의 표가 보여주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원인계의 천계에 들어가는 즉시 다시 나오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아주 긴 시기의 데바찬의 삶을 보낸다. 또한, 몇몇 사람은 그곳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이리하여, 사람이 자기의 아스트럴계의 삶이나 속죄의 삶을 스스로 조성하는 것처럼,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 바로 자신이 만든 원인들에 의하여 자신이 살게 될 천계의 기간과 특성 둘 다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당연히 받을 양과 특성들에 가장 적합한 기쁨의 질을 그대로 가지게 될 것이다. 

아주 중요하고 흥미로운 또 다른 요소는 데바찬에서의 삶의 강도强度이다. 이 강도는 다양한 부류의 자아에 따라 다르며, 물론 천계에서의 삶의 기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259쪽의 표에서, 동일한 무리에 속하는 자아 내에, 발달은 동일하지만 화신化身하는 기간에 있어 상당히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약 1,200년이 걸리고 다른 하나는 약 700년이 걸린다. 그런데 발생하는 영적인 힘의 양은 두 경우에 거의 똑같지만, 보다 짧은 기간이 걸리는 사람은 축복의 양을 두 배로 천계의 삶 속으로 집약시킨다. 말하자면, 맹렬하게 일을 하고, 경험을 집중시켜서, 다른 부류에 속하는 사람보다 주어진 기간에서 거의 두 배의 일을 해낸다. 

앞 페이지에 간략히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차이는 개체화(개성화)가 이루어지는 방법에 기인한다. 개체화의 세부 사항―이것은 우리의 주제를 벗어난다―을 다루지 않고 말하면, 애정이나 헌신을 순간적으로 표출함으로써 개체화되어 훨씬 더 집중되거나 강렬한 형태로 자기의 축복을 가지는 사람보다, 지성의 발달에 의해서 서서히 개체화되는 사람은 더 긴 데바찬의 삶을 살게 하는 다른 종류의 영적인 힘을 일으킨다. 발생하는 힘의 양에 어떠한 차이가 있다면, 보다 짧은 기간이 걸리는 사람의 경우에 약간 더 많은 힘이 있는 것 같다. 

화신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큰 차이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자아가 자신의 천계의 삶을 완성하는 속도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여러 조사에 의해서 드러났다. 

이에 대한 중요한 이유 중 한 가지는, 사람들이 서로의 카르마적인 상호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어떤 위대한 목적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사람들이 집단으로 함께 화신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들이 수행하도록 운명지어진 실제적인 일이 미래에 그들에게 닥쳐올 때 그들 사이에 애정의 유대가 아주 강하게 결속되어 서로 오해하거나 불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즉 유사한 예비적인 경험을 경험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함께 화신하는 “봉사자”로 알려진 어떤 자아의 집단이 존재한다. 집단이 헌신적으로 봉사한다는 위대한 사실이 다른 모든 고려 사항에 우선하며, 집단은 그 봉사를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로 뭉쳐진 것이다. 

이 안에는, 어떠한 부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카르마의 법칙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카르마를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카르마가 해결되는 속도는, 각자의 특별한 여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조정된다. 이리하여 사람이 카르마로부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보다 고차원적인 (신의) 사역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도록, 과거의 어떤 카르마가 아주 급속히 청산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상당히 축적된 카르마가 집중되어서 한꺼번에 어떤 큰 재난으로 닥칠 수도 있다. 카르마가 재빨리 제거되면, 그의 길은 깨끗하게 닦여지게 된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인류의 경우에, 카르마가 이와 같이 집중적으로 표출되지 않으며 천계에서의 삶은 일반적인 속도로 이루어지게 된다. 

삶의 강도에서의 차이를 포함하여, 카르마를 해결하는 시간에서의 차이는 멘탈체에서 보면 멘탈체의 광휘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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