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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블라바츠키, 포웰)

멘탈체 [멘탈체] 13.육체적 의식 또는 "깨어있는" 상태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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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3,696회 작성일 16-07-3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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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육체적 의식 또는 “깨어있는” 상태의 의식 




이 장에서 우리는 멘탈체를 존재하는 그대로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각성waking”의식 동안 즉 보통의 물질적인 삶(물질계의 삶)에서 사용되는 것으로써 의 멘탈체를 고찰하겠다. 물질계의 삶에서 멘탈체의 성질과 작용을 결정하는 세가지 요소들을 차례로 다루는 것이 편할 것이다. 

즉 (1) 물질적 삶The Physical life 
(2) 감정적 삶The Emotional life 
(3) 멘탈적 삶The Mental life 

(1) 물질적 삶The Physical Life 

아스트럴체 제 8장에서, 물질적 삶에서 아스트럴체에 영향을 주는 제요소들이 열거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거기에 쓰여진 것의 대부분이, 필요한 부분에 수정을 안 가하면, 멘탈체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그러한 요소들을 다시 장황하게 다루지 않고, 필요한 곳에 최소한의 설명을 곁들여 다만 간략하게 그것들을 요약할 것이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각각 아스트럴 및 멘탈체의 상응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조야하고 순수하지 못한 신체는 멘탈체를 또한 조야하고 불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멘탈질료의 일곱 등급이 (물론 아스트럴 질료의 일곱 등급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질료의 일곱 등급에 각각 해당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멘탈체는 물질적인 고체들, 액체들, 기체들 그리고 에테르들에 의해 즉 물질적인 질료의 하위 4등급에 의하여 더욱 특별히 영향을 더욱더 받는 것 같다. 

물론, 조야한 여러 가지 멘탈질료로 구성된 멘탈체가 다양하고 고상한 상념들에 반응하는 것보다 더 조야한 형태들의 상념에 더 쉽게 반응할 것이라는 것은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조야한 음식과 음료는 조야한 멘탈체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육고기 음식flesh food과 술과 담배는 육체, 아스트럴체 그리고 멘탈체에 해롭다. 똑같은 사실은 거의 모든 약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아편과 같은 약이, 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섭취되는 경우엔 가능한 삼가해서 복용해야한다. 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마약이 신체에 작용한 후에 멘탈체와 아스트럴체로부터 아편의 나쁜 작용을 제거할 수 있다. 

게다가, 육고기와 술을 먹은 신체는 고차원 의식이 흘러 들어오는 과정 중에 특별히 건강을 잃기 쉽다. 사실, 신경질환은 고차원 의식이 (체내에 섭취된) 육고기에 의한 생성물flesh products로 막히고 술에 중독된 몸을 통하여 자기를 표현하려고 애를 쓰는 중에 형성 되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 

모든 종류의 더러움은 종종 물질계보다 고급계들에서 더욱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신체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발한perspiration으로서 항상 배출되고 있는 노폐물에 상응하는 멘탈 및 아스트럴의 질료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을 가진다. 

떠들썩하거나 날카롭거나 갑작스러운 소음들은 자기의 아스트럴 및 멘탈체들이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라도 가능한 멀리 피해야한다. 이것이 번잡한 도시 생활이 끊임없는 소음의 영향으로 조형력있는 아스트럴체와 멘탈체에 치명적인 어린애들 뿐만 아니라 신비학도가 도시 생활을 피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소음이 멘탈체에 미치는 영향이 누적된 결과로 피로감이 생기고 명철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의 멘탈체는 자신의 주변 환경에 있는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자신의 방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어떤 개념들에 대한 표현을 그의 눈앞에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술가 자기 자신 즉 자기의 내적인 상념과 감정의 아주 많은 부분을 자신의 작품안에 부여하기 때문에 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멘탈 및 아스트럴 질료로 명확히 표현된, 그림의 보이지 않는 이면들(숨겨진 측면들)이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향기가 꽃속에 내재하고 꽃으로부터 발산되는 것과 똑같이 멘탈 및 아스트럴 질료들은 그림으로부터 발산된다. 

책들은 상념형태들이 특별히 강하게 집중된 센터들이며 한 인간의 삶에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미치는 영향은 종종 엄청나다. 그러므로 서가에 불쾌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책들을 보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부적들Talismans or amulets은 어느 정도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들은 에텔체와 아스트럴체에서 이미 설명되었다. 간략하게 말하면, 그것들은 두가지로 작용한다. 

(1)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체의 파장들을 방사한다. 

(2) 부적의 존재와 그 목적을 앎으로써 휴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믿음과 용기가 생겨, 자기 자신의 의지력으로 그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힘을 발휘한다. 

만일 부적이 만든 사람과 ‘연결되고’ 소지한 사람이 마음으로mentally 만든 사람을 부르면, 자아the ego는 반응하여 자기 자신의 보다 강력한 상념 파장에 의해 부적의 진동들을 강화시킬 것이다. 자기magneticism를 강하게 띤 부적은 이리하여 막대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감정들과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적 성질physical nature도 극복되어야 하며, 육체적 성질이 다루기에 가장 어렵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얼마의 사람들은 부적 같은 것들을 조롱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신비학의 길이 너무 힘이 들어서, 자기들에게 제공되는 보조적인 것은 무엇이든 기쁘게 사용한다. 

이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부적은 아마도 샴뱔라Shamballa에서 보관되고 있는 비전들Initiation과 여러 용도에 사용되는 능력의 막대기Rod of Power일 것이다. 

사람은 주위 대상들의 색채들에 의해 또한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의 감정이나 상념이 보다 정묘한 질료로서 어떤 색채를 표현하듯이, 역으로 심지어물체에 있는 특정 색채는 지속적이고 진동적인 압력을 우리에게 가하여 그 색깔에 적합한 감정이나 상념을 불러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특별한 경우에 적합한 마음과 감정의 상태를 더 일으키려는 노력에서, 제단의 앞휘장과 예복등에서 기독교 교회가 어떤 선정된 색채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있다. 

사람은 자기 방의 벽들과 가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상념들과 감정들에 의하여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 가까이에 있는 물체들을 자기화하여, 그 물체들이 자신에게나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든지 똑같은 형태의 상념들과 감정들을 암시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놀라운 실례들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감방과 다른 비슷한 장소들의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또한 분위기가 글자 그대로 높은 진동율로 진동하고 있는 “거룩한 장소들”의 중요성이 존재한다. 명상과 깊은 사색을 하기 위하여 따로 선정된 방은 곧 주변 세계의 분위기보다 더 순수하고 더 고상한 분위기를 띠게 되므로, 현명한 학도는 자기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이 사실을 당연히 이용한다. 

이러한 종류의 상념의 힘thought-force이 여러 가지로 작용하는 것에 관한 하나의 실례로, 우리는 “재수 없다”라는 평판을 가진 어떤 배들이나 엔진들engines의 경우를 인용할 수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떤 배들에게 사고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들이 분명히 발생했다. 

그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발생했을 것이다. 강한 증오의 감정들이 배를 건조한 사람이나 처음 취임한 선장에 의해서 마음에 품어졌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러한 감정들 자체만으로는 심각한 불행을 일으킬 정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선상생활에서는 사고가 단지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행동함으로써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 경우에 단 한순간이라도 지체하거나 느슨하게 행동하면 재난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기술된 것들과 같은 그러한 집단적인 상념형태들은 순간적인 부주의나 순간적으로 주저하게 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악의가 가장 쉬게 작용하는 채널이 될 것이다. 

또한 그 반대도 사실이며 “행운을 가져다 주는lucky” 분위기가, 물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쾌활한 상념들에 의해 물체주위에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유물遺物에 대해서도 유사하다. 개인적 자기磁氣를 높이 띠는 어떠한 물품도, 실제적으로 그 힘이 줄어들지 않고 수세기 동안 그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지도 모른다. 유물이 진짜가 아닐지라도, 수세기 동안의 헌신적인 감정에 의해서 그 속으로 쏟아 부어진 힘은 그것을 강하게 자기를 띠게 하고 선善을 위한 하나의 힘이 되게 한다. 

이리하여 표현에 있어서 다소 예스럽고 운치 있지만 다음, 충고속에 신비적인 지혜occult wisdom가 존재한다; “네가 굽는 빵속에 사랑을 이겨 넣어라; 피곤한 얼굴을 한 여성을 위하여, 네가 묶는 소포속에 힘과 용기를 포장하라; 의심의 눈을 가진 남성에서 네가 지불하는 동전으로 신뢰와 정직함을나누어 주라.” 선의 법칙Good Law을 연구하는데 학도는, 비록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자기에게오는 축복의 근원을 전혀 알지 못할지 모르지만,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중하게 축복들을 나누어주는 기회는 많다. 

제 11장에서 상념전이를 다룰 때 언급했던 것처럼, 영적으로 더욱 높이 발달한 사람과의 교제는 멘탈체의 발전과 훈련에 상당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불로부터 발산하는 열이 불 가까이 있는 물품들을 따뜻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들 보다 파워가 더 강한 사고가의 상념방사들은 우리의 멘탈체로 하여금 그와 공명동조하게 하고, 당분간 우리는 우리의 멘탈능력mental power이 증대되었음을 느낀다. 

이러한 결과의 예는 종종 강의에서 일어난다. 청중속에 있는 사람이 연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 말하여지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그 개념이 희미하게 되어 그것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는데 마음에 전혀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설명은 보다 강한 사고가의 뛰어난 진동들은 그때에 청취자의 멘탈체가 상념형태들을 만들었지만, 나중에 그 멘탈체가 그 자신의 힘으로 그러한 모습들을 다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진실한 스승은 어떤 표현된 말에 의해서 보다 자기 가까이에 제자들을 있게 함으로서 훨씬 더 제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바다, 산, 숲, 폭포들 등과 연관되는 보이지 않는 실체들은 사람들의 멘탈체, 아스트럴체와 에텔체에 지금까지 (어떠한 진동에) 익숙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각성시키는 진동들을 발산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여행은 세가지 체 전부(아스트럴,멘탈,에텔체)에게 유익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육체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모든 것이 상위의 체들에 좋은 반응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또한 사실인데, 감정적이고 멘탈적인 삶은 신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멘탈체와 아스트럴체가 명백히 본질적으로는 육체보다 상념의 능력에 더 잘 반응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심지어 육체의 질료(의 배열)은 감정과 상념의 능력에 의하여 형성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미덕이든지 악이든 지간에 습관적인 상념은 신체상의 특징들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는 성자들의 몸에 나타나는 “성흔聖痕”의 예인데, 그것에 대한 많은 실례들이 기록되어있다. 현대의 정신분석에 관련된 문헌과 다른 출처들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예들을 들 수 있다. 

오늘날의 매우 진화된 제 5인류인에게 있어서 사실상, 신체가 멘탈적인 상태 들에 의하여 주로 지배된다. 그러므로 신경의 긴장을 일으키는 염려, 멘탈적 고통과 근심은 신체조직의 여러 작용들을 쉽게 혼란시키고 허약하게 하거나 질병을 일으킨다. 올바른 사고와 감정은 신체에 다시 작용하여 프라나 혹은 생명력을 동화시키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멘탈적인 힘과 차분함은 이리하여 직접적으로 신체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왜냐하면 진화된 제 5인류는 말그대로 그의 신경계통으로 그의 육체적인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2) 감정적인 삶(The Emotional Life) 

멘탈체와 아스트럴체는 아주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깊은 영향들을 미친다. 카마kama와 마나스manas 사이의 긴밀한 연합과 서로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은 이미 카마-마나스에 관한 장인 제 6장에서 다루었다. 여기에서는아스트럴체가 멘탈체에 부수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몇 가지 더 다루고, 또한 멘탈체가 아스트럴체에 미치는 영향도 다룰 것이다. 

아스트럴체를 휩쓰는 감정의 홍수 자체는, 멘탈체로부터 오는 어떠한 (정신적) 활동도 육체의 두뇌 속으로 거의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분간은 가능하지만, 멘탈체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이것은 멘탈체 자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멘탈체와 두뇌 사이를 연결하는 아스트럴체가 하나의 진동율만으로 진동하고 있어서 그 진동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다른 어떠한 진동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한 감정이 멘탈적인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형적인 예는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이며, 이 상태에서는 지성을 나타내는 노란색은 그의 오오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특히 불쾌한 색조로서 표현되는, 아스트럴체에서의 저속한 관능성(지나친 성적 욕망에 빠지는 것)은 멘탈체에서는 전혀 표현될 수 없다. 이것은 다양한 계界들의 질료가 점점 정묘해짐에 따라 저차원의 특성들을 표현하는 능력을 점차로 상실한다는 원리의 실제적인 예가 된다. 

이리하여 관능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멘탈 영상을 형성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상념과 영상은 아스트럴 질료로 표현되지 멘탈 질료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유의 색조를 띤 인상을 아스트럴체에 남기겠지만 멘탈체에서는 그에 수반되는 악들 즉 이기심, 자만심과 사기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색채들을 더욱 뚜렷하게 할 것이다. 

바람직한 감정과 상념이 그렇지 않은 것들과 서로 뒤섞인 덩어리들이 때때로 함께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깊은 헌신과 어떤 형태의 관능성은 거의 뒤죽박죽으로 빈번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불쾌하게 뒤섞인 결과로 괴로움을 받는 사람은, 헌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힘에 의해서 지나친 성적 욕망과 같은 저속한 부류에 해당하는 (관련된) 자신의 멘탈체를 단단한 보호막으로 둘러쌈에 의해서 그와 같은 욕망이 끼치는 나쁜 작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고차원에서 내려오는 영향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작용하게 하면서 저차원의 영향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이다. 

이것은 멘탈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현상 중의 한 예일 뿐이다. 

물론 멘탈체가 아스트럴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리고 학도는 이러한 사실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각각의 체體는 결국 바로 상위의 체體에 의해서 통제된다는 것을 그는 기억할 것이다. 이리하여 육체는 자체를 지배할 수 없고, 아스트럴체의 열정과 욕망들이 육체를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아스트럴체는 멘탈체에 의해 훈련되고 그 통제를 받아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욕망을 변화시켜서, 욕망보다 고상한 측면인 의지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사고(작용)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상념으로서의 자아(Self)를 통해서만 욕망으로서의 자아(Self)를 매스터시킬 수 있다. 

욕망들 가운데서 선택한다는 의미로서의 자유는 욕망보다 상위의 어떤 것이 작용하며, ―보다 낮은 차원의 것에 관한 한―상위의 어떤 것이란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마나스라는 것을 나타낸다. 신비학도는 육체의 두뇌 센터들이 아스트럴계로부터 (온 힘과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아스트럴체의 챠크람 혹은 힘의 센터들은 멘탈계에 의해 형성되고 통제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멘탈체로부터 육체의 두뇌에 보내어지는 모든 자극(충동)은 아스트럴체를 통과해야하며, 아스트럴계의 질료가 물질계의 질료보다 상념진동들에 훨씬 더 잘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아스트럴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에 비례해서 더 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아스트럴체 p. 78에서 다루었다. 

그러므로 멘탈질료의 진동들이 또한 아스트럴 질료의 진동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사람의 상념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들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이리하여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람은 때때로 자기가 보기에 악행들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함에 의해서 쉽게 화를 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사실인데, 이것은 종종 잊혀진다. 조용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분노나 다른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과학적이고 논리 정연한 습관이 배인 마음이 아스트럴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예가 ‘인간 그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Man Visible and Invisible’에서 삽화 20에 설명되어 있다. 그것은 과학적인 유형의 사람이 가지는 아스트럴체를 묘사하고 있다. 아스트럴체의 색깔들은 명확히 구별되는 띠들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고 그 경계선들은 분명하고 뚜렷하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지성적으로 발달하여 헌신적인 감정이 그 띠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려 관능성이 상당하게 감소된다. 

집중능력을 성취하는 것과 멘탈체의 발달은, 일반적으로, 꿈속의 삶조차 영향을 미쳐 꿈을 생생하게 하고, 지속되게 하고 합리적이며 교훈적으로 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아스트럴체는 멘탈체의 색채들을 단순히 반영시켜야하고 영적으로 발달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실제로 반영하는데, 자신을 이성이 지시하는 것만을 느끼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역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이 멘탈체에 결코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멘탈체는 정욕 또는 감정이 아니라 사고의 원천home이기 때문이다. 


(3) 멘탈적인 삶(The Mental Life) 

비록 인간의 마음을 형성시키는 것과 진화발전시키는 것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어느 정도 작용해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자신의 의식이 활동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튼튼하고 충분히 활기가 있어 활동적이며 자기에게 제공되어지는 보다 고매한 사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멘탈체를 가지고자 한다면, 그는 꾸준히 올바르게 사고하는데 전념해야한다. 

각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도) 바로 자신이 자신의 멘탈체에 거의 항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연사들이나 작가들 같은 다른 사람들이 가끔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자신의 멘탈체에 항상 영향을 미친다. 자기의 멘탈체 구성에 있어서 미치는 자신의 영향은 다른 어떤 사람의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마음의 정상적인 진동율을 결정하게된다. 그 진동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념들은 그의 마음에 접촉할 때 반발하여 한쪽으로 튕겨난다. 그가 진실을 생각하면, 거짓말은 그의 마음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가 사랑을 생각하면, 증오가 그를 방해할 수 없다. 그가 지혜를 생각하면, 무지가 그를 마비(무력화)시킬 수 없다. 

말하자면 땅을 묵혀두듯이 마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때는 어떠한 사고의 씨앗이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음이 아무렇게나 진동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지나가는 아무 상념의 진동에나 반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신의 것이며 그는 자신―자아―이 선택하는 그러한 상념들만 들어오도록 허락해야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고(생각)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으며, 비록 좀 더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도 실제로 자기들이 전심 전력하여 일하는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그리고 확고하게 생각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결과적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그 위에) 뿌려지는 상념의 씨앗은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만일 자신의 상념들을 자세히 지켜본다면, 그 상념들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쏟아 내놓은 상념들의 부분들로 주로 이루어진 우연한 상념들의 흐름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일반 사람은 어떠한 특정한 순간에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또는 왜 그가 그것을 생각하는 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의 마음을 어떤 명확한 대상에 향하게 하는 대신에, 그는 마음을 제멋대로 되도록 하거나 돌보지 않는 밭을 묵히듯이 놔두어서, 안으로 들어오는 아무 상념의 씨앗이라도 발아하여 성장할 수도 있다. 

일반 사람의 상념 수준 약간 위로 자기자신을 고양시키기를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신비학도는, 항상 그에게 엄습하고 있고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상념 중 상당한 부분이 자기의 상념보다 낮은 수준에 속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그 상념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온갖 종류의 주제들에 관한 너무나 광대한 상념의 바다가 존재하므로, 그 상념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고군 분투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지부支部의 지붕을 이는 것To Tyle The Lodge”에 모든 프리메이슨이 “끈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사항”이 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자아自我― 즉 실제적인 사고자 the real thinker―의 충동(목소리)들에만 귀를 기울이도록 훈련된 그의 두뇌는 사용되지 않을 때라도 여전히 고요할 것이고 주위의 상념의 바다로부터 오는 무분별한 상념 흐름들을 받아들여 반응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이 물질계보다 통찰력이 더 예리하고 판단이 더욱 참된 상위의 계들로부터 오는 영향들에 더 이상 둔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발견할 것이다. 

상위의 의식이 자신을 주장(표현)할 수 있는 때는, 바로 사람이 그의 마음을 차분한 상태로 유지하여 고요하게 하고 상념이 없는 그 상태로 유지할 때 한해서 뿐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비로서 명상과 요가를 할 준비가 갖추어지게 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차후에 살펴볼 것이다. 

멘탈체를 훈련하는데 있어, 그것은 실제적인 지침이 된다. 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사람은, 사색을 함으로써 삶이 더 고상해지며 더 행복할 수 있고 지혜로서 고통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의 상념이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상념을 주시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무기를 올바르게 사용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상념이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두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상념을 통제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상념의 힘으로 엄청난 양의 선善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상념의 힘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독서는 멘탈체를 발달시키지 못한다; 단지 사고 작용만이 멘탈체를 발달시킨다. 독서는 단지 사고(생각)하기 위한 자료들을 제공하는 정도의 가치만 있다. 그리고 사람의 멘탈(체)의 성장은 그가 독서중에 하는 생각의 양에 비례한다. 규칙적이고 지속적이나 과도하지 않는 훈련에 의해서 사고思考 능력은, 근육의 힘이 운동에 의하여 증대하듯이 증가할 것이다. 그러한 사고작용 없이는 멘탈체가 느슨하게 형성되고 조직화되지 않은 채로 있게 된다; 집중을 얻지 못하고는 상념(사고)의 힘은 결코 발휘될 수 없다. 

이리하여 성장은 연습함으로써 일어난다는 인생의 법칙은 육체에 대해서 적용이 되는 것처럼 멘탈체에 대하여도 적용이 된다. 멘탈체가 훈련이 되어 사고 작용중에 진동하게 될 때, 새로운 질료가 멘탈계의 영역으로부터 끌려와 멘탈체를 형성하게 되고, 이리하여 멘탈체의 구조가 점점 더 복잡하게 될 뿐만 아니라 크기도 증대한다. 사고의 정도가 멘탈체의 성장을 결정하고, 사고(하는 내용의) 질質이 멘탈체의 성장에 사용되는 질료의 종류를 결정한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독서 방법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해보자. 조심스럽게 쓰여진 책 속에서는, 각각의 문장이나 단락은 어떤 명확한 개념을 분명하게 진술한 내용이 있는데, 그 개념은 저자의 상념 형태에 의하여 표현된다. 그 상념 형태는 대개 중심 개념으로부터 추론한 것들이거나 필요한 추론의 결과들을 표현하는 다양하고도 보조적인 상념형태들로 둘러싸여 있다. 

독자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즉시되든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되든지 간에, 저자의 상념 형태의 정확한 복사판이 형성되어야한다. (중심 개념에서 파생한) 추론들을 나타내는 상념 형태들이 또한 나타나느냐 나타나지 않느냐는 것은 독자의 마음의 성향에 달려 있다. 즉 그가 한 순간에 어떤 진술에 뒤따라 (연결되어) 오는 모든 것을 재빨리 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멘탈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사람은 그 상념 형태를 결코 정확하게 반영시킬 수 없고, 기하학적인 모양 대신에 일정한 모양이 없고 명확하지도 않은 일종의 (구름 같은) 덩어리를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볼 수 있는 명확한 모양을 만들 수는 있으나, 그 끝과 각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거나 한 부분이 나머지에 비하여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외 다른 사람들은 개념에 대한 일종의 앙상한 뼈대만을 만들어서, 자신이 그 개념의 윤곽을 포착했지만 생동감이 전혀 없고 상세하지도 못한 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개념의 한쪽 측면은 이해했지만 다른 측면은 이해하지 못하여, 상념 형태를 절반만 형성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한가지 사항만 포착하고 나머지는 무시할 수도 있다. 

탁월한 신비학도는 정확하게 그리고 즉시로 중심 개념의 영상을 재현할 것이고, 그가 마음속에서 그 중심 개념을 숙고할 때 보조 개념들이 그 주위에 하나씩 나타나게된다. 

영상들이 불완전한 주된 이유들 중 하나가 관심의 부족 때문이다. 투시가는 독자의 마음이 동시에 6개의 주제들에 빠져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의 두뇌에는 가정 문제들, 사업상의 염려들, 즐거웠던 일들에 대한 추억 및 기대, 공부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지루함 등등이 들끓고 있는데, 이것들이 그의 멘탈체의 10분의 9를 차지하고 나머지 10분의 1로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서 동화(이해)하고자 하는 상념형태를 포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한다. 

그러한 단편적이고 산만한 독서는 보잘 것 없고 상호 관련이 없는 상념 형태들로 멘탈체를 가득 채우게 된다. 이것은 산뜻한 대 건축물을 짓듯이 멘탈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조약돌만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음과 멘탈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위하여, 주의를 모으는 훈련과 집중력은 필수적이며,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관련이 없는 모든 상념들을 그의 마음에서 제거하는 것을 배워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잘 훈련된 학도는 저자의 상념 형태를 통하여 그의 마음과 접촉하여 어려운 사항들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나 이해력을 그로부터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가 (영적으로) 상당히 발달되어 있지 않으면, 자기에게 오는 새로운 상념들이 저자의 상념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상념들로 생각하게된다. 

물질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멘탈적인 일WORK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두뇌를 통하여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멘탈체가 두뇌를 통하여 쉽게 작용할 수 있도록 육체의 두뇌는 훈련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어야한다. 

두뇌의 특정 부위들은 그 사람의 어떤 특성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경향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정돈되어지고 멘탈체에 있는 부분들과 당연히 상호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 

물론, 신비학도는 생각하는 기술을 신중하게 훈련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사고(력)는 훈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 보다 훨씬 더 강력해서,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것은 그가 그렇게 하고자 구체적으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도, 완전히 무의식 중에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신비학도는 상념(사고)의 엄청난 힘을 배웠기 때문에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데 있어서 책임은 그에 비례하여 더 크며,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그 힘을 활용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나 하는 것이 좋겠다. 쉽게 자극을 받아 논쟁하는 사람들은, 설전舌戰을 하러 열심히 돌아다닐 때 자기들이 멘탈적인 요새의 성문들을 열어놓고 요새를 무방비 상태로 남겨두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때는 우연히도 그들의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상념(의 힘)들이 멘탈체 안으로 들어와서 멘탈체를 장악해 버릴 수도 있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항들에 힘이 종종 낭비되어지는 동안, 멘탈체의 전체적인 상태는 흘러들어 오는 영향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신비학도는 자기 자신이 논쟁을 할 때는 상당히 주의를 해야한다. 논쟁이 상대편의 의견을 좀체 바꾸게 할 수 없다는 것은 공통된 경험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논쟁은 기존의 견해들을 더욱 확고부동하게 할 뿐이다. 

인생의 매 순간에는 의식이 멘탈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자든지 깨든지 간에,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의 멘탈체를 형성하고 있다. 의식의 모든 진동은, 비록 그 진동이 단지 지나가는 상념에 의해 일어날지라도, 멘탈체 속으로 멘탈 질료의 입자를 얼마 끌어들이고 다른 얼마의 입자는 멘탈체에서 떨쳐낸다. 멘탈체가 순수하고 고상한 상념들에 의하여 진동하게 되면, 진동들의 속도는 조잡한 질료의 입자들이 떨어져 나가게되고 보다 정묘한 입자들이 대신하게된다. 이런 식으로 멘탈체는 꾸준하게 더욱 정묘해지고 더욱 순수하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더욱 정묘한 질료들로 구성된 멘탈체는, 조잡하고 악한 상념들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조잡한 질료들로 구성된 멘탈체는 스쳐 지나가는 악한 상념들에 영향을 받을 것이고 좋은 상념들에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어 전혀 이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사실이 멘탈체의 “형태적 측면form-side”에는 더욱 세부적으로 적용된다. “생명적 측면life-side”에 주의를 기울이게 될 때, 신비 학도는 바로 의식의 본질essence이 항상 자신을 참된 자아Not-Self와 동일시하고자 하며, 또한 항상 참된 자아를 거절함으로써 스스로를 (EGO로서) 표현(재주장)한다는 것을 또한 명심해야한다. 사실, 의식(의 활동)은 이러한 주장―“나는 이것이다”―과 부인―“나는 이것이 아니다”―을 번갈아 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므로 의식은 우리가 진동이라 부르는 “견인과 반발력attracting and repelling”이며, 또 질료 속에 견인과 반발을 일으킨다. 이리하여 의식에 의하여 발생된 진동들의 특성이, 멘탈체 속으로 끌려오는 질료의 정묘함이나 조잡함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가 제 11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상한 상념을 가진 다른 사람에 의해 우리에게 작용하는 상념진동들은, 우리의 멘탈체 내에 이에 공명반응하는 질료들의 진동을 같이 일으키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진동은 너무나 조잡해서 활발하게 고진동하지 않는 질료를 교란시켜 멘탈체로부터 몰아내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타인으로부터 받는 혜택은 주로 우리자신의 과거의 사고작용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유익한 영향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우리의 멘탈체 내에 타인의 상념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유형의 질료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체들과 마찬가지로, 멘탈체도 습관의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멘탈체를 어떤 유형의 진동에 익숙하게 만들면, 우리의 멘탈체는 쉽게 그리고 즉시로 그 진동을 재현하게된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게되면,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을 좋게 생각하는 것 보다 습관적으로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더 쉽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보지 못하게 하고 나쁜 점들을 엄청나게 과장하게 하는 편견들이 그와 같이 생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들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 반면에, 물론, 좋은 생각들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들 보다는 바람직한 특성들을 찾도록 자신을 훈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싫어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습관이 형성될 수 있다. 그렇게 연습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의심과 멸시가 배어든 고정된 습관을 따르는 대신에 존경과 감사가 깃든 습관을 따라서 더욱 쉽게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사고작용의 힘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면, 삶은 더 안락하고 더 즐겁게 되고, 우리의 멘탈체 속으로 적절한 종류의 멘탈질료를 채워 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마땅히 활용해야 하는 그들의 멘탈능력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즉 그들의 마음은 상념의 창조자creators라기 보다는 저장소receptacles이어서, 내부로부터 그들 자신의 상념들을 창조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상념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의식의 태도를 바꾸게 되고 마음의 작용을 지켜 보게 된다. 자신의 사고작용 중 많은 부분이 결코 그 자신의 것이 아니며, 상념들이 어디서부터 그에게 오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의 마음이란 단지 상념들이 통과하는 장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처음에는 상당히 번민을 느낄지도 모른다. 

예비적인 단계인 이러한 멘탈적인 자의식self-consciousness(상태)에 이른 후에 다음 단계에서는, 상념들이 그의 마음으로 들어왔을 때와 마음에서 나갈 때에 있어서 그 상태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즉 상념들이 그와 함께 머무는 동안 자신이 직접 그 상념들에게 덧붙인 것이 무엇인지를―관찰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신속하게 그의 마음은 정말로 활발하게 작용하게 되고 (자신에게만 속하는) 자기의 창조 능력들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다음에, 그는 자기의 마음 내에 무엇을 머물도록 허용할 것 인지를 극도로 신중하게 선택해야한다. 만일 그의 마음에서 좋은 상념을 발견하면, 그는 그 상념을 곰곰이 생각하고, 강화시켜서, 하나의 자애로운 힘agent으로써 다시 내 보낼 것이다. 그의 마음에서 나쁜 상념을 발견할 때, 그는 그 상념을 재빨리 몰아낼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들과 특성들에 대해 상념이 조심성 없게 작용하게 되면, 마음을 그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반응하는 성향을 띠게 만들어 그런 생각들을 구체화시키는 행동들을 야기하게되어 실제적인 위험이 된다. 상념으로 악한 행위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가 행동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도 전에, 자신이 악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멘탈적인 사고작용은 밖으로 쇄도하여(표출되어) 행위를 유발시킨다. 왜냐하면 모든 행위는 사고작용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없이 행동한다고 말할 때 조차도, 그것은 그가 이전에 자신의 내부에서 자라도록 허용한 상념들과 욕망들과 감정들을 본능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상념들을 품어야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이 연습을 얼마동안 꾸준히 실행한 후에, 그는 마음속으로 흘러오는 악한 상념들이 점점 더 적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상념들은 다름 아닌 마음이 직접 스스로 작용함에 의해서 (마음으로부터) 몰아내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그의 마음은 주위에 있는 모든 유사한 상념들에 대하여 하나의 자석처럼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의 멘탈체속으로 다량의 좋은 질료를 끌어들이고, 그의 멘탈체는 해를 거듭하면서 그 내용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이리하여 상념-영상들thought-images의 창조가 외부로부터 온 자극에 의해서 만들어지도록 마음을 방임하는 위험, 즉 외부세계로부터 온 자극이 멘탈체에 영상을 만들어서 창조적인 멘탈질료―필연적으로 자신을 (멘탈체로부터) 표출시켜 (무엇인가의 창조를 위해서) 현현시키려고 노력하는―를 에너지로 가득차 있는 상념체들속으로 방출시키게 내버려두는 것은 상당히 큰 위험이므로 피해야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실제적으로 우리의 모든 내적인 투쟁과 영적인 어려움 들은 멘탈체가 이렇게 통제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활동하기 때문이다. 멘탈체가 이렇게 통제되지 않은 채로 작용하도록 허용하게 되는 것은 바로 무지 때문이다. 우리는 무지를 지식으로 대체하고, 멘탈체를 통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멘탈체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자극에 의해서 영상들을 형성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 된다. 

엄청나게 많은 고통이 통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상상想像(력)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 저급한 정욕들―특히 성적인 욕구―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절제되지 않은 상상 때문에 생기게된다. 비록 강렬한 욕구가 느껴질지라도, 행위를 유발하는 것은 바로 창조력을 지닌 사고작용이다. 욕망의 대상을 단순히 보거나 생각할 때에는 위험이 전혀 없으나, 사람이 자기의 욕망들에 굴복하는 것을 상상하고, 그가 만든 영상을 욕망이 강하게 만들도록 허용하는 바로 그때에 그의 위험은 시작된다. 만일 우리가 창조력을 지닌 상상들에 빠지지 않으면, 그리고 빠지는 그 순간까지는, 욕망의 대상 자체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일단 상상에 빠지게되면, 투쟁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이 투쟁에서 우리가 스스로 의지意志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도움을 받아 열광적으로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상상들이 초래하는 결과들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두려움에 자극 받아 행하는 열광적인 저항은 의지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의지는 무엇보다도 오히려 상상을 통제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하며 이리하여 우리의 어려움을 일으키는 원인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우리가 나중의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가 이번 생애동안에 모으는 질료들은 사후의 삶에서 멘탈 힘들과 능력들―이것들은 미래의 삶에서 더욱 많이 표현될 것이다―로 점차로 발전하게된다. 다음 생에 화신할 때의 멘탈체는 우리가 현재의 멘탈체로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있다. 카르마의 법칙은 우리가 씨를 뿌리는 대로 결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한 생애를 다른 생애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 없고 또한 기적같이 무無로부터 어떤 것을 창조할 수는 없다. 

이는 챤도기오파니사트Chândogyopanishat에 쓰여져있는 것과 같다: “인간은 사고(작용)의 산물이다; 즉 그는 나중의 생애에는, 이번 생애生涯에서 심사 숙고深思熟考하는 것 바로 그것으로 된다.” 

사고 습관들과 싸우고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것, 즉 멘탈체로부터 일단의 멘탈 입자들을 몰아내고 보다 고차원적인 다른 입자들로 대체하는 것을 포함시키는 과정은, 신체적인 습관들을 타파하는 것이 대개적으로 처음에는 어려운 것처럼, 물론 처음에는 당연히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며, 옛날의 사고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올바로 사고하는 것이 점차로 쉬워지고 결국엔 자연스려워진다. 

사람이 집중적인 멘탈 활동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전혀 없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치유학파들―크리스챤 사이언스, 멘탈 사이언스와 다른 단체들―은 치유 성과들을 달성하는데 있어 이러한 강력한 힘agency을 활용하며, 그들의 유용성은 시술자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힘들에 관한 지식에 주로 달려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공 사례들이 그 힘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실패한 것들을 살펴보면, 힘을 조작하는 것이 능숙하지 않거나 치료하기에 충분한 힘을 불러낼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상념이란 창조성creativeness, 즉 인간의 삼위일체 중 세번째 측면의 현현이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의지는 성부聖父 하나님 아버지의 현현이며, 사랑은 성자聖子의 현현이며 상념 혹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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