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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블라바츠키, 포웰)

멘탈체 [멘탈체] 8.상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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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4,769회 작성일 16-07-31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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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상념체
 



우리는 지금 사람이 생각하면서 멘탈체를 사용할 때 생성되는 두번째 영향 즉 상념체들의 형성을 살펴보게 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상념은 멘탈체의 질료에 일단의 진동들을 일으킨다. 이러한 자극하에, 멘탈체는 레코드판 위에 놓인 미세한 입자들이 레코드판이 음율에 따라 진동하게 될 때 하나의 형태를 방출하는 방식으로 진동들의 속성에 의해 형성된 멘탈체 자신의 진동하는 부분을 방출한다. 

이렇게 방출된 멘탈 질료는 둘러싼 공기로 부터 멘탈계(즉 제 2엘리멘탈계)의 적절한 형태의 엘리멘탈 에센스를 모으고 그 에센스를 그 자신의 진동률과 조화시키면서 진동시킨다. 

이렇게 순수하고 단순한 하나의 상념체가 생긴다. 그러한 멘탈 상념체는 아스트럴 혹은 감정체(The Astral Body에서 기술된)를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빛이나며 보다 찬란한 색깔을 띠고있고 더 강하고 더 지속적이며 더 많은 생명활력을 담고있다. 

상념의 영향의 사실적인 기술은 다음과 같다. “멘탈계의 질료를 사용해서 상념체들을 형성하는 이러한 멘탈 진동들은 그들의 신속함과 미묘함에 의해서 가장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항상 변화하는 색깔들을 일으킨다.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영묘하게 되고 밝게된 진주층에 있는 무지개 색깔들과 같은 다양한 색조들의 파동이 모든 상념체들 주위로 그리고 관통하여 휩쓸고 지나가서 각각은 지상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색들을 포함하면서 파동치며, 생생하게 빛나고 섬세한 색깔들의 조화를 나타낸다. 많은 생명과 움직임으로 약동하는 이 미묘한 질료의 조합에서 나타나는 매우 아름다운 미와 광휘를 그대들에게 이해시킬 수가 없다. 그것을 목격해온 모든 사람은 힌두교인이든지 또는 불교도든 기독교도인이든지 간에 그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에 대해 황홀한 용어로 말을 하고 항상 그것을 자기가 전혀 묘사할 수 없음을 실토한다. 말이란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는데 있어서 아무리 교묘하게 구성되더라도 단지 그것을 천하게 하고 타락시키는 것만 같다. 

하나의 상념체는 상념을 일으킨 하나의 생각에 의해서 생명력을 부여받아 강한 활동성을 띠고있는 일시적으로 생동하는 실체이다. 만약, 상념체가 보다 미묘한 종류의 질료로 이루어진다면 아주 강력한 힘이 될 것이고 강하고 지속적인 의지의 지시를 받을 땐 매우 강력한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용도에 대한 세부적인 것을 우리는 나중에 다루게 될 것이다. 

엘리멘탈 에센스는 멘탈계의 질료를 활성화시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이상하며 반지성적인 생명체이다. 그것은 인간의 상념의 영향에 아주 쉽게 반응해서 인간의 멘탈체로부터 외부로 보내어진 모든 자극(진동)은 즉각적으로 이 에센스로 구성된 수용체를 일시적으로 입는다. 사실, 그것은 아스트럴 엘리멘탈 에센스보다 상념의 작용에 훨씬 더 순간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멘탈 엘리멘탈 에센스는 아스트럴 엘리멘탈 에센스와는 크게 다르다. 즉, 그것은 다른 사슬뒤에 있는 하나의 완전한 사슬이며 그러므로 그 안의 힘은 다른 힘과 같이 똑같이 집중된 방식으로 작용할 수 없다. 그것은 다루기에 아주 힘이든다. 왜냐하면 그것이 항상 하나의 상념에서 또 다른 상념으로 돌진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갈피를 못잡는 상념들에 대하여 주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상념은 이야기된 바와 같이 잠시동안은 일종의 살아 있는 생물같다. 상념의 힘은 영혼이며 엘리멘탈 에센스는 상념의 몸이다. 이러한 상념체들은 엘리멘탈이나 때때로 인위적인 엘레멘탈이라 불린다. 

모든 상념체들을 생성하는데 토대가 되는 제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1) 상념의 질이 색깔을 결정한다. 
(2) 상념의 본질이 형태를 결정한다. 
(3) 상념의 명확함이 윤곽의 명료함을 결정한다. 

상념체들은 색채와 모습에 있어서 무한히 다양할지도 모른다. 다양한 색채들과 그 의미는 아스트럴체The Astral Body와 또한 이 책의 이전의 장에서 기술된것 처럼 아스트럴체 및 멘탈체에 존재하는 것과는 일치하기 때문에 학도는 지금 그것들에 익숙할 것이다. 

예를 들면, 애정은 환하게 빛나는 장미색(연흥색)을 일으키고 치유를 갈망하는 것은 아름다운 은빛을 띤 힌색을 일으킨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강화시키고자 하는 멘탈적 노력은 아름답게 번쩍이는 황금색의 노란색을 일으킨다. 

어떠한 수용체에 있어서도 노란색은 항상 지성을 나타내지만, 그 색조는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색채들의 혼합에 의해 복잡해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지성은 하위의 채널로 향해지면, 특히 대상이 이기적이면 보다 짙고 탁한 색조를 띤다. 일반기업가의 아스트럴체나 멘탈체에서의 지성은 노란 황토색으로 나타나는 반면 철학이나 수학의 연구에 전념한 순수한 지성은 빈번히 황금색으로 나타난다. 어떤 힘을 지닌 강력한 지성이 인류의 이익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사심없이 사용될 때 이것은 점차로 아름답고 밝게 빛나는 담황색의 노란색이 더해진다. 대부분의 노란색을 띤 상념체들은 뚜렷이 윤곽이 있으며 모호한 구름같은 노란색은 비교적 드물다. 그것은 교묘한 발명의 재주의 결과에 대한 감상과 같은 즐거움이나 영리한 장인의 기교에 대한 즐거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성질의 구름은 어떠한 개인적 감정의 완전한 부재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노란색과 아울러 그 감정에 적합한 색깔을 뛸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상념체들은 그 상념체를 일으키는 생각에 적합한 회전하는 색채의 구름들일 뿐이다. 학도는 현재의 인류의 단계에 있어서 대부분 사람들의 잘못 훈련된 마음들의 산물인 구름같이 흐릿하고 불규칙적인 모습의 상념들이 엄청나게 우세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이리저리로 떠도는 수천의 상념들 중에서 분명하고 명확한 상념체들을 본다는 것은 아주 드문 현상에 속한다. 상념이 명확한 곳에 형태도 명확하게 형성되며 그 윤곽은 뚜렷하고 종종 아름다운 모습을 띤다. 그러한 모습들은 무한히 다양하지만 종종 어떤점에서는 그들이 표현하는 상념의 종류중 전형적인 것들이다. 추상적인 생각들은 대개 온갖 종류의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하학적인 형태들로서 자신들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에 의해서 물질계에서 우리에게 가장 단순한 추상적인 사실들 조차도 멘탈계에서는 명확한 사실들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상념과 감정의 강도는 하나의 별도의 실재로서 상념체의 지속뿐만 아니라 상념체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 지속기간은 상념의 형태가 생성된 후에 상념을 일으킨 사람이나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상념이 반복되거나 상념체에 제공되어지는 영양분에 또한 달려있다. 

상념이 지성적이고 비인간적이라면 즉 사고자가 대수학이나 기하학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고 있다면 그때 그의 상념체들은 멘탈계에 국한 될 것이다. 그의 상념이 영적인 성질의 것이면 즉 깊고 사심없는 사랑과 감정에 대한 열망을 띠고 있다면 그 상념은 멘탈계에서 위쪽으로 상승하고 위쪽에 있는 붓디 수준들의 광채와 영광을 (물질계에) 많이 가져올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그 상념의 영향은 매우 강력하고 그러한 모든 상념은 선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한편, 상념자체 속에 자아적이거나 인간적인 욕망에 해당하는 어떤 것을 가지면 즉시 진동은 하향하고 상념은 멘탈 질료로서 감싸질 뿐만 아니라 거기서 더하여 아스트럴 질료를 그 주위에 끌어 당긴다. 그러한 상념체는―보다 정확하게는 상념 감정형태라 불릴 수 있다―물론, 다른 사람들의 멘탈체 및 아스트럴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상념체는 단연코 가장 일반적인데 이는 욕망과 정욕이나 감정에 물들지 않은 평범한 남녀의 상념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류의 상념체들을 카마-마나스의 활동 즉 욕망에 지배된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으로 간주해도 된다. 

사람이 어떠한 구체적인 대상 즉 책과 집 그리고 풍경을 생각할 때 그는 멘탈체의 질료에 그 대상물에 대한 조그마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러한 영상은 멘탈체의 상부에 떠오르며, 대개 그 사람의 면전에 그리고 거의 눈 높이에 뜬다. 그것은 그 사람이 그 대상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고 대개 잠시 동안 존재하며 그 시간의 길이는 상념의 강도와 뚜렷함에 달려 있다. 이 형태는 아주 객관적이어서 멘탈적인 투시력을 소유한 사람에 의해서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그는 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조그마한 초상을 만드는 것이다. 똑같은 결과가 ‘상상’에 해당하는 모든 노력에 의해서 자신이 그릴 그림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는 화가는 그의 멘탈체의 질료로 부터 그것을 그려서 자신 앞의 공간속으로 그 형태를 투사하고 마음의 눈 앞에 유지한뒤 복사한다. 똑같은 방법으로 소설가는 멘탈질료로 그의 등장인물의 영상을 구축하고 그의 의지를 행사함으로써 이러한 꼭두각시들을 하나의 위치나 장소로부터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서 이야기의 줄거리가 글자 그대로 자신 앞에 전개되도록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멘탈영상들은 너무나 완전히 실재적이어서 그들은 투시자에 의해서 보일뿐만 아니라 그들의 창조자 외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이동되고 재정돈 될 수 있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장난하기 좋아하는 자연의 요정들이나 종종 동료작가의 작품을 지켜보는 ‘죽은’ 소설가가 영상들 혹은 인형들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그 줄거리들이 그들을 만든사람에게 마치 자기자신들의 의지를 개발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리하여 이야기의 줄거리는 자기자신들의 의지를 개발한 것처럼 보인다. 이리하여 이야기의 줄거리는 저자에 의해 원래 의도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침을 따라 진행되기도 한다. 

조각가는 자신이 창조하고자 의도하는 조상彫像에 대한 강한 상념체를 만들고 그의 대리석 덩어리 속에 심고 상념체에 침투된 대리석의 바로 그 부분만이 남아 있을 때 까지 상념체 외부에 놓여있는 대리석을 계속해서 잘라내 버린다. 

유사하게 강사는 자기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부분들을 간절히 생각할 때, 그 노력으로 인하여 일련의 상념체들, 대개 강한 상념체를 만든다. 그가 그의 청중을 이해하도록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주로 그 자신의 상념이 충분히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서두르고 명확하지 않은 상념체는 미소한 인상만을 주며 더군다나 그것도 어렵게 전달한다. 반면에 명확한 상념체는 청중의 멘탈체들로 하여금 상념체를 재현하도록 한다. 

최면술은 상념체의 객관성(실재성)에 대한 실례들을 제공한다. 어떤 생각의 상념체는 백지에 투사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최면에 걸린 사람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가령 그것이 아주 실재적이어서 최면에 걸린 사람은 그것이 마치 실제적인 물체인 것처럼 보고 느끼게 된다. 

역사와 드리마 그리고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에 관련된 많은 상념체는 다소간에 영속적이다. 예를 들면, 대중의 공상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부터, 존 번얀John Bunyan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신데렐라, 알라딘의 램프 등과 같은 동화들로 부터 등장인물들과 여러 장면들을 강하게 묘사해왔다. 그러한 상념체들은 그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들과 합쳐졌기 때문에 집단적이다. 어린애들은 생생하고 능력있는 상상들을 가지는데 그리하여 그들에 의해 읽히는 책들은 상념체들의 세계에서 대개 잘 표현된다. 그래서 셜록 호움즈, 선장케플, 의사 니콜라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이 훌륭하고 실물같이 존재한다. 그러나 ㅇ대체로 오늘날의 소설들로 부터 불러내어지는 상념체들은 우리 선조들이 로빈슨 크루소나 셰익스피어 희곡의 등장인물에 의하여 만들어졌던 상념체들 만큼 아주 명확하지는 않다. 물론, 이것은 사람들이 이전의 경우보다 더 피상적으로 그리고 보다 덜 관심을 가지고 독서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념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정도로 하자.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상념체들을 일으킨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 미치는 영향들을 고찰해보자. 

각 사람은 삶을 통하여 살아가면서 세가지 부류의 상념체들 창조한다. 

1) 생각하는자 주위에도 집중되어 있지도 않고 또한 어떤 사람을 특별히 목적으로 심지도 않음으로써 생각하는 자가 지나온 길을 표시하듯이 일종의 흔적으로서 남아있는 상념체들. 

2) 생각하는자 주위에 집중되어 있음으로써 그 주위를 맴돌고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따라다니는 상념체들. 

3) 명확한 대상을 목적으로 하며 생각하는자로 부터 주어진 목적과 목표를 향해서 외부로 정확하게 날아가는 상념체들. 

첫 번째의 상념체는 분명하게 개인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다른 어떤 사람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기 때문에 공중에 떨어져서 단순히 떠 있으며 항상 상념체를 일으킨 사람에 의해서 원래 보내어진 진동들과 비슷한 진동들을 방사한다. 상념체가 어떠한 다른 멘탈체와 접촉하지 않으면 방사된 상념체는 점차로 에너지원을 다 써버린다. 그 경우엔 상념체는 무너져 산산 조각으로 된다. 

그러나 만약 상념체가 가까이 있는 어떤 다른 멘탈체에게 동조적인 진동을 각성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어떤 인력이 형성되고 그 상념체는 대개 그 멘탈체에 의해 흡수된다. 

진화의 현 단계에서 인간의 상념의 대부분은 활발하게 이기적이 아닌 경우에 조차도 대개 자기중심적이다. 그러한 자기 중심적 사고들은 사고자 위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멘탈체 주위에 그러한 상념들의 껍질로 두르고 있다. 그 상념들은 끊임없이 그들 주위에 맴돌고 항상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작용한다. 그들의 성향은 자신들을 재현하는 것 즉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이전에 품었던 상념(과 감정)들을 반복시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부로부터 그에 대한 이러한 압력, 특별히 그가 노동을 한 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이러한 끊임없는 어떤 상념들에 대한 암시를 느끼는데 그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명확한 상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상념들이 악하다면 그는 빈번히 그들을 그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선동하고 유혹하는 악마들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름 아닌 전적으로 자기자신의 창조물이다. 즉 자기가 자기자신의 유혹자이다. 

이러한 종류의 반복된 상념들은 소위 프라랍다Prârabda 혹은 ‘익은..’카르마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똑같은 종류의 상념들을 말하자면 복수하듯이 지속적으로 되풀이 하는 것은 사람을 마침내 포화된 용해액의 상태에 비유될 수도 있는 지점까지 데리고 온다. 똑같은 종류의 더 많은 물질을 포화액에 더하는 것이 전체용액에 응고를 야기시키는 것처럼 사소한 부가적인 충동Impulse이 주어지면 (포화된 상념체에) 작은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사하게,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하는 반복된 상념들은, 적합한 기회에 자극이 그 사람에게 주어지면, 영웅주의적인 행위로 구체화되어 나온다. 그러한 상황하에서는 사람은 반복된 상념이 행위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자기자신이 자기 희생의 어떤 영웅적인 일을 실행한 것에 놀랄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고찰은 자유의지와 필요 또는 운명의 오래된 문제를 설명하는데까지 나아간다. 더군다나, 사람의 상념체들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상념체들을 그 사람쪽으로 끌어당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이렇게 외부로부터 엄청난 에너지의 증원군을 자기자신에게 끌어 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자신 속으로 끌어들인 이러한 힘들이 좋은 종류인지 또는 나쁜 종류에 속하는 것인지는 자기자신에게 달려있다. 

대개 각각의 명확한 상념은 하나의 새로운 상념체를 창조한다. 그러나 같은 성질의 상념체가 이미 사고자 주위에 맴돌고 있다면 어떤 상황하에서 같은 주제에 관한 새로운 상념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대신에 이전의 상념과 합쳐져서 그 상념을 강화시켜서 오랫동안 똑같은 주제를 곰곰히 생각함으로써 사람은 때때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상념체를 창조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 상념이 악한 상념이라면 그러한 형태는 아마도 수년 동안 지속되며 잠시 동안 실제 살아 있는 실체의 모든 모습과 능력들을 지니는 진짜 나쁜 영향력이 될지도 모른다. 

자기 중심적인 상념의 껍질은 명백히 반드시 (진리에 대한) 멘탈시력Vision을 흐리게 하고 편견의 형성을 촉진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껍질을 통하여 그 사람은 당연히 세상의 만물을 껍질을 이루는 주된 색깔들로 물들여진 형태로 내다본다. 외부로부터 그에게 이르는 모든 것이 자신이 가진 껍질의 특성에 의하여 이렇게 다소 왜곡된다. 이리하여, 사람이 상념과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때까지 그는 만물을 실제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관찰들은 지독히도 잘못 만들어진 유리처럼, 모든 것을 왜곡하고 물들이는 이 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리야상가Aryasangha(지금은 듀알컬 대사)가 침묵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Silence)에서 마음은 ‘실재의 파괴자인가(The Great Slayer of the Real)’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어떠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으로부터 만들 수 있는 이미지만을 (골라서) 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우리자신이 만든 이러한 상념체들에 의해서 우리에게는 필연적으로 물들여져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떤 사람의 상념이 단순히 곰곰히 생각만하고 어떠한 감정도(애정이나 싫어함과 같은) 욕망도(그 사람을 원하는 것 같은) 연관시키지 않는다면, 그 상념은 대개는 자기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지각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상념과 연관된 감정 즉 애정이 있다면, 사고자의 멘탈체의 질료로부터 형성된 상념체는 그 형태주위에 또한 아스트럴체의 질료를 끌어당기고 이렇게 아스트럴이 결합된 멘탈 형태는 자기가 생성된 몸에서 뛰어나와 감정의 대상으로 똑바로 가서 그에게 달라붙는다. 

그것은 레이던(Leyden)항아리에 비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엘리멘탈 에센스의 형태는 항아리에 해당되고 상념에너지는 전하(Charge of electricity)에 해당한다. 

그 사람이 그 순간에 수동적인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자기 내부에 그 상념체의 진동들과 조화를 이루는 성질의 활발한 진동들을 가지고 있으면 그 상념체는 즉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면,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결과는 자신과 비슷한 진동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기자신과 비슷한 진동을 불러일으킨다. 아니면 이미 발견된다면 이미 존재하는 그 진동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것들에 아주 강하게 몰두되어 있어서 상념체의 진동이 출입구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상념체는 (에너지와 진동을) 방출할 기회를 기다리면서 그 주위에 맴돈다. 

한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보내어진 상념체는 이렇게 보내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람에게 얼마의 힘과 (진동)질료 두 가지 모두를 실제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상념파의 영향과 상념체의 영향사이의 차이는 우리가 제7장에서 본바와 같이 상념파는 명확하고 완전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과 똑같은 성질의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념파는 이렇게 그 활동에 있어서 훨씬 덜 명확하지만 그 범위는 훨씬 더 광범위하다. 다른 한편, 상념체는 상념의 정확한 성질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그 성질을 정확하게 이전시키고 명확하고 완전한 생각을 사실 전달한다. 그러나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전달 가능하다. 따라서 상념파는 탁월하게 적응성이 있다. 예를 들면 헌신의 파동은 헌신의 대상이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우에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받는 사람에게서 헌신을 일깨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상념체는 그 헌신에 의해서 원래 느꼈던 존재의 정확한 영상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형상화 시킨다. 

상념이 충분히 강하다면 거리는 상념체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보통사람의 상념은 대개 약하고 널리 퍼져 있는 관계로 해서 제한된 영역 밖에서는 효과가 없다. 

강하게 다른 사람 쪽으로 향해진 상념체는 말하자면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면서) 사랑이나 보호하고자 하는 갈망의 상념체는 생각되어지는 사람에게 가서 방어하고 보호하는 힘으로서 그의 오오라 속에 남아 있게 된다. 그 상념체는 의식을 지닌 그리고 신중한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자극에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봉사하고 방어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보호진동의) 오오라에 부딪히는 (같은 종류와 진동의) 친근한 힘들을 강화시키고 친근하지 않은 힘들을 약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주위에는 진정으로 수호천사들이 이렇게 창조되고 유지된다. 멀리 떨어져있는 아이를 위한 많은 어머니의 ‘기도’는 위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작용하면서 이렇게 아이 주위를 둘러싸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지식은 당연히 우리로 하여금 우리 손안에 놓여있는 엄청난 힘을 의식하게 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상념파들을 다룰 때 언급되어진 것 즉 우리가 물질계에서는 어떤 사람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멘탈체와 아스트럴체는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은 빈번히 육체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감수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상념, 애정적인 상념 등을 사람의 멘탈체나 아스트럴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항상 우리에게 이용 가능한 것이다. 상념의 법칙들이 그러한 이상 여러 가지 결과들이 자연히 생긴다. 어떤 명백한 결과가 물질계에 따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일어나고 작용하는 것이다. 

학도는 상념체는 다른 사람의 오오라에서 그 상념체의 진동에 동조하여 반응할 수 있는 질료들이 있는 경우에만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상념체의 진동들이 그의 오오라가 진동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경우들에서는 상념체는 그것으로부터 반동하는데 그것도 상념체가 부딪히는 힘에 비례하는 힘으로 반동한다. 그러므로, 순수한 마음과 가슴이 해로운 공격들에 대한 최고의 보호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순수한 마음과 가슴은 섬세하고 미묘한 물질들로 이루어진 멘탈체와 아스트럴체를 형성하고 이러한 체들은 조야하고 밀집된 질료들이 필요로하는 진동들에 반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로운 의도를 가지고 투사된 악한 상념이 그렇게 순수한 체에 부딪히면 그것은 되튀어서 거의 무저항의 자기선을 따라 다시 날아 가는데 그 투사자 쪽으로 되돌아 가서 부딪힌다. 그는 자기(투사자)가 일으킨 상념체의 질료와 유사한 질료를 그의 멘탈체와 아스트럴체에 가지고 있기때문에 반응하는 진동들 속으로 내던져져서 그가 다른 사람에게 일으킬려고 의도했었던 파괴적인 영향들을 겪는다. 이리하여 “저주(그리고 축복)은 자기에게로 되돌아 온다.” 이로부터 또한 착하고 아주 발전된 사람을 미워하거나 의심하면 아주 심각한 결과들이 발생한다. 그에게 보내어진 상념체들은 그를 해칠 수 없고 상념체는 자신을 보낸 주인에게 되돌아가서 그 투사자들을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육체적으로 파괴한다. 

사람이 자기자신을 어떤 먼곳에 있는 것 처럼 생각하거나 먼곳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 그는 자기자신의 영상(상상) 속에서 만든 상념체가 그 곳에 나타난다. 흔히 그러한 상념체는 다른 사람에게 보였고 때때로 아스트럴체나 그 상념체를 보낸 사람의 유령으로 오해되어 왔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이 그때 상념체를 볼 수 있는 충분한 투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상념체가 스스로를 유형화시킬 수 있는, 다시 말해 상념체 주위에 일시적으로 물질계의 질료를 어느 정도 끌어들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한 형태를 일으키는 상념은 필연적으로 강한 상념이 되어야하므로 멘탈체의 상당한 부분을 이용하게 되고 그 형태가 사고자를 떠날때 작고 압축되어 있지만, 그 상념체는 목적지에 나타나기 전에 대개 실물 크기로 팽창한다. 더구나 본질적으로 반드시 멘탈질료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와 같은 상념체는 아주 많은 경우에 또한 그 주위에 상당한 양의 아스트럴 질료를 끌어 당긴다. 아스트럴 형태를 띌때 멘탈적인 엘리멘탈은 그 이글이글하는 색깔이 자신이 취하는 하위질료의 껍질층 안에 여전히 쉽게 보일 수 있지만 자기의 광채의 많은 부분을 상실한다. 원래의 상념이 멘탈계의 엘리멘탈 에센스에 영혼을 부여하듯이 멘탈 엘리멘탈로서의 상념체에 대비(대조)해서 본다면 바로 그 상념(아스트럴 질료를 끌어당긴 상념)이 아스트럴 엘리멘탈의 영혼으로서 작용한다. 

사고자의 의식의 어떤 부분도 막 기술된 것과 같은 상념체에 포함되지(작용하지) 않는다. 일단 그로부터 내보내어지면 일반적으로 상념체는 완전히 별개의 실체다. 그러나 사실 상념체는, 상념체의 창조자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어떠한 인상을 받는 가능성에 관한한 실제로 관련이 있다. 그러나 멘탈에서 어느 정도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일반 투시능력보다 훨씬 더 향상된 형태의 투시능력이 있다. 이것은 새로 창조된 상념체에 의해서 인상들을 받는 것이 가능하게 할 만큼 그 상념체와의 연관과 그것에 대한 지배를 보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상념체에 주어진 그러한 인상들은 동조진동에 의해 사고자에게 전송될 것이다. 이러한 투시능력이 완벽한 경우에 그것은 거의 마치 보는 자(투시자)가 그의 의식의 일부를 상념체로 투사해서 관측이 가능한 일종의 전초지점으로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 자신이 상념체를 대신하여서 서있는 것처럼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잘 볼 수 있다. 그가 보고 있는 인물들은 그에게 실물크기이며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원한다면 그의 (의식의) 관점을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여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상념체들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연습한다. 상념들이란 실제적인 것들이며 매우 힘이 있는 것들이다. 우리 모두가 밤낮 끊임없이 상념체들을 만들고 있다. 우리의 상념들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우리자신의 일이 아니다. 사실 악한 상념들은 악한 말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미치고 이미 자신들속에 악의 씨앗들을 잉태하고 있는 어떠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한 매스터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간은 계속적으로 자신의 공간속에 그의 상념흐름을 자기의 공상들, 욕망들, 충동들과 정욕들의 결과로 붐비는 자기자신의 세계로 채우고 있다” 

그는 또 아데프트가 할 수 있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아데프트는 그의 상상이 비가시적인 세계에 있는 무활성의 우주질료로 부터 형성한 상념들을 가시적인 세계속으로 투사하여 그 안에서 구체화 할 수 있다. 아데프트는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자신의 주위에 저장해온 질료와 오랜 세월동안 모든 형태를 경험한 질료을 단지 이용하고 조작할 뿐이다. 그는 단지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그것을 실재의 존재로 소생시킬 뿐이다.” 

영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사람과 개발된 사람의 차이는 개발된 사람은 의식적으로 상념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상념체를 의식적으로 창조하여 통제할 수 있을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그의 능력들이 아주 크게 증대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는 당장에 멘탈체로 방문하기에 불편한 장소에 활동하기 위해 상념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의 상념체들을 지켜보고 인도할 수 있고 그를 자신의 뜻(의지)를 수행하는 대리인으로 할 수 있다. 

아마도 상념체의 최고의 예는 기독교에서 천사로 알려진 예다. 이것은 천사들의 계의 일원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자세하게 보면) 그리스도의 외형을 띠고 있고 그리스도 자신의 의식의 확장인, 그리스도의 상념체다. 성변화聖變化로 알려진 “원소”에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그와 같은 존재의 천사에 의해서이다. 

유사한 현상이, 다소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H.O.A.T.F의 초상(화)이 사용되는 프리메이슨 지부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상념체는 완전히 그리스도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서 꼭 그가 육신의 형태로 지부에 서 있는 것처럼 그가 지부와 함께거주 한다는 생각으로 축복된 은혜를 받게 된다. 물질계에서 독사가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죽이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의지력를 행사함으로써 인위적인 엘리멘탈 즉 상념체를 즉각적으로 흩어지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엘리멘탈이 어떻게 작용하든지 간에 아주 이례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신비주의자의 마음을 끌진않는다. 이에 대한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엘리멘탈 에센스에 관한 설명이 약간 필요하다. 

상념체를 구성하는 질료인 엘리멘탈 에센스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자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그것은 자체의 내부적인 충동에 의해 모든 가능한 진동폭(진동율)으로 진동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상념의 진동이 에센스를 어떤 진폭으로 잠시동안 계속 진동하도록 할 때 그것은 상당한 도움을 받아서 다음번에 유사한 진동이 그것을 강타할 때 이전보다 더 쉽게 진동할 것이다. 

엘리멘탈 에센스에 영혼(생명)을 불어넣는 상념이 나쁘냐 좋으냐는 (에센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로하는 것은 단지 어떤 종류의 상념에 의해 사용되기만 하면 된다. 선과 악의 차이는 영향을 받는 에센스의 성질에 의해 나타난다. 악한 상념이나 욕구는 그를 표현하기 위하여 보다 조야한 질료를 필요로하고 보다 고차원의 상념이나 욕구는 더 정묘한 질료를 필요로한다. 이리하여 점진적으로 엘리멘탈 에센스는, 인간과 자연령, 데바와 심지어 동물들의 상념이 자신에게 작용함으로써 그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정도까지 진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엘리멘탈 에센스가 이러한 방식으로 진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비가는 어떠하든지 그것의 진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오히려 가능한한 방어막을 사용함으로써 자기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인공 엘리멘탈에 대하여 방어하기를 더 좋아하고 인공 엘리멘탈을 공격하여 파괴시키는 것을 꺼려한다. 

물론, 학도는 보다 조야한 형태들의 에센스가 진화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저속한 상념들을 생각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보다 조야하고 저 차원의 상념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신비가는 고차원적이고 순수한 상념들을 생각하고, 이리하여 아직은 애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더 정묘한 엘리멘탈 질료의 진화를 도울려고 언제까지나 노력해야 한다. 

상념체들이란 주제를 마치기 전에 우리는 모든 소리는 우리가 음악적인 소리라 부르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소리는 아스트럴 및 멘탈질료에 각인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아스트럴체 제7장에 이것에 대한 사항이 약간 기술되어 있다. 

기독교의 성찬식을 거행하는 동안에 상위계들에서 형성되는 상념체 또는 상념체계는 음악에 의해 만들어진 (상념)체들과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일반적인 상념체들과는 약간 다르다. 그 상념체는 그 의식이 처음에 진행되는 동안에는 목사의 모인 회중에 의해 에텔, 아스트럴 및 멘탈수준에서 제공되어지다가 나중에 훨씬 높은 차원의 질료가 주로 천사무리로 부터 도입되어 형성되는 고급계의 구조(들)로 이루어진다. 

상념체계thought-editice는 물을 증류하는 공장의 액화장치에 비유될 수 있다. 증기는 냉각실에서 냉각되고 물로 응결된다. 비슷하게, 성찬식의 체계는 숭배자들에 의해 제공되는 상념적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응축하는 용기를 제공한다. 그 속으로 가장 높은 계들로 부터 신성한 힘이 특별히 쏟아부어져 내려와서 천사와 같이 돕는 존재Angel-helpers로 하여금 물질계에서 어떤 명확한 목적들을 위하여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모든 위대한 종교들의 의식들은 어떤 종류의 공통된 행위를 통하여 그러한 결과들을 낳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프리메이슨의 의식들은 비록 다른 방법에 의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목적을 달성한다. 프리메이슨 의식에서 형성된 상념체는 등을 대고 누워있는 사람의 오오라라고 또한 여겨질지도 모르는 진짜 “천상의 덮개”이다. 

이러한 상징은 다른 곳에서, 예를 들면 많은 색깔을 지닌 요셉의 외투와 비전가가 입는 영광의 의복과 또한 그리이스 철학자들의 Augoeides 즉 인간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 정묘한 세계에서 입는 영광스러운 몸에서 처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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