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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 秘經 [SD] 스탠저 Ⅰ(우주의 밤)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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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370회 작성일 16-08-02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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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609, Vote: 9, Date: 2002/03/31 14:28:00 , IP: 210.181.109.226
글 제 목 [SD]스탠저 Ⅰ(우주의 밤) - 6
작 성 자 sirius (cosmic1004@hanmail.net)




6. 일곱의 장엄한 주(主)들과 일곱의 진리는 존재하는 것을 그만두고 있었다(a). 우주, 즉 필연의 자식은 있으면서 없는 "그것"에 의해 토해지기 위해, 파라니쉬판나(b)(Paranishpanna) (절대적 완전함, 파라니르바나(Paranirv a), 시초의 능동적 질료)안에 심어들어 버렸다. 아무 것도 없었다.(c) 


(a) 일곱의 장엄한 주란 일곱의 창조 영들, 즉 디야니-초한이고, 히브리어의 엘로힘(El h m)에 해당한다. 그것은 크리스트교 신들의 계보에서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과 다른 천사들이 속하는 대천사의 하이어라키와 같은 것이다. 

로마 교회의 도그마적 신학에서는 성 미카엘은 모든 만(灣)과 갑(岬)을 지키고 있지만, 비교체계에서 디야니(Dhy ni)들은 차례로 다가오는 라운드와 지구 체인의 근본 인종들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보살들 즉, 디야니-붓다들(Dhy ni-Buddhas)에 상응하는 인간을 각 라운드와 인종 기간에 보내주고 있다고 말한다. 

일곱 개의 진리와 계시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계시되어있는 비밀 중에서 네 개 만이 우리들에게 내려진 것이다. 우리들은 아직 제4라운드에 머물고 있으므로, 세계에는 지금까지 네 사람의 붓다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므로 뒤에 좀더 충분히 다루어야 될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는 "사제(四諦)와 네 개의 베다가 있을 뿐이다"라고 힌두교도와 불교도는 말한다. 똑같은 이유로, 이레나에우스(Irenaeus)는 4복음서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새로운 라운드에서 선두에 서게 될 새 근본인종은 그의 계시와 계시자들이 있어야 함으로, 다음 라운드에서는 다섯 번째의 계시와 계시자들이, 또 그 다음 차례의 라운드에서는 여섯 번째의 계시와 계시자들이 오게 될 것이다. 

(b) "파라니쉬판나(Paranishpanna, 圓成實)"는 절대적 완성인 것이고, 모든 실재는 활동의 대기간 즉, 마하-만반타라의 끝날 무렵에는 절대적 완성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절대적 완성 속에서 휴식의 기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티베트에서는 이것을 용-그룹(Yong-Gr b)이라고 말한다. 요가차리아(Yog ch ra)학파 시대까지는 파라니르바나의 진정한 성질에 관해서 공개적으로 가르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완전히 비교로 되어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그것에 관해서 모순된 많은 설명이 행해져 내려왔다. 그것을 이해할 수가 있는 사람은 진정한 유심론자(唯心論者) 뿐이다. 절대적 완성의 상태를 이해하고 또, 어째서 무아(無我)와 공(空)과 암흑이 삼위일체인가, 그것만이 자존이며 완전인 것인가를 알고 싶은 사람은 파라니쉬판나 외에는 모든 것들을 유심(唯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파라니르바나는 상대적인 의미에서만 절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의 활동기에서는 좀 더 높은 기준에 따라, 더욱 높은 절대적 완성에 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일랜드 식의 표현을 좀 빌리자면, 그것은 마치 완전한 꽃이 완전한 꽃이었던 상태를 끝맺고 꽃이 죽어서 완전한 과실이 되는 것과 같다. 

씨크릿 독트린에서는 세계에서부터 원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진보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끝이 없고, 한정이 없는 진보는 생각해낼 수 있는 시작(처음)이 없을 뿐 아니라, 상상해 낼 수가 있는 끝이란 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우주 안에 있는 하나의 우주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수한 우주는 모두 필연의 자식들이 된다. 왜냐하면 거대한 우주적인 체인에서 하나의 연결고리인 우주 하나 하나는 모두가 앞에 있는 우주와의 관계에서는 결과이고, 뒤에 있는 우주와의 관계에서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출현과 소멸은 "큰 숨(Great Breath)"의 내쉼과 들이쉼으로 표현되고 있다. 큰 숨은 영원하고, 또 운동이므로 절대자의 세 가지 측면 중하나이다. 추상적 공간과 추상적 계속은 다른 두 측면이다. 

큰 숨이 내쉬어질 때, 이 숨을 신성한 숨이라 부르고, 불가지(不可知)의 신성 즉, 유일한 실재의 숨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 불가지의 신성은 말하자면 훗날에 코스모스가 될 하나의 생각을 내쉰 것이다. 또 신성한 숨을 다시 들이마셨을 때 "거대한 어머니(Great Mother)"의 가슴속으로 사라져 들어가고, 어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c)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란 큰 숨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들은 절대적 존재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 비존재들과 구별해낼 수 있는 형(形)의 존재로 상상하여 묘사해낼 수는 없다. 현재, 과거, 미래 세 개의 기간은 비교철학에서는 복합시간인 것이다. 

현상계에 관해서 만이 이 셋은 합성 수(數)인 것이고, 원체의 영역에서는 추상적인 타당성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말하고 있듯이 "과거는 현재이고 미래이기도하다. 미래는 또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역시 있다." 이것은 마드야미카(M dhyamika)의 프라상가(Prasa ga)파의 가르침에 있는 하나의 계율에 의한 것이나, 그것이 순수한 비교적인 학파로부터 떨어져나간 후, 그 학파의 교의가 알려졌다. 

쉽게 말해서, 계속과 시간에 관한 개념은 모두가 연상의 법칙에 따라 우리들의 감각에서 나온다. 이 개념이란 인간의 지식의 상대성의 느낌의 테두리 안에 묶여져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아의 경험 속이 아니고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아의 진화가 현상적 존재라고 말하는 마야를 쫓아버렸을 때 소멸한다. 예로, 우리 의식의 여러 가지 상태가 파노라마적으로 연속되는 것이 아니면, 시간이란 무엇이겠는가? 어느 대사의 말씀에 의하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의 어설픈 언어로 말을 써야만할 경우, 나는 현기증을 느낄 때도 있다. 주관적 전체의 객관적인 면만을 나타내는 빈약한 개념이라서 목적에 전혀 맞지 않았다. 섬세한 조각을 하는데, 도끼를 쓰는 것과 같은 꼴이다." 쉽게 "삼브리티(Sa v iti)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파라마르타(Param rtha)를 획득해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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