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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과 그 메카니즘 [혼과 그 메카니즘] 3장 에텔체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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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3,317회 작성일 16-07-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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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884, Vote: 4, Date: 2005/01/28 15:02:41 , IP: 220.93.126.13
글 제 목 [혼과 그 메카니즘] 3장 에텔체의 이론
작 성 자 문성호




혼과 그 메카니즘: 3장 에텔체의 이론 

제3장 에텔체의 이론 


동양의 심리학자들은 서양 심리학자들이 가정이라고 간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인간의 영적인 본성을 강조하여 물리적인 본성 자체는 영적인 활동의 결과라고 믿는다. 그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내적인 주관적 에너지가 외적으로 현현한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는 우주적이고 인간적인 메카니즘 전체를 결과로 간주하며 과학은 그 결과만을 다루고 있다고 믿는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에너지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모든 형상에 스며들어 운동하게 하는 자로, 이른바 에테르와 유사한 어떤 실체를 통해 작용한다. 물질은 가장 거친 형태의 에너지 또는 영혼이며, 영혼은 가장 승화된 상태의 물질이다. 

2. 모든 형상에는 이 에테르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형상은 에테르 형체 또는 에텔체를 갖고 있다. 

3. 작은 원자가 음의 측면과 아울러 양의 원자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모든 에텔체에는 음의 물질 한가운데에 양의 에너지 센터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또한 음적인 육체에 대비되는 양적인 에텔체를 갖고 있다. 그것은 육체를 활동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존재 상태를 유지하도록 통일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4. 사람의 에텔체는 심령적 활동을 일으키면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가 흐르는 7 가지 주요 에너지 핵들을 갖고 있다. 이 핵들은 뇌척추계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 심령적 활동의 기초 또는 혼은 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지배적인 원리는 머리에 있으며, 이 센터로부터 모든 메카니즘이 지시를 받으며, 다른 6 가지 에너지 센터들은 이를 통해 에너지를 받게 된다. 

5. 특정한 센터들만이 사람 안에서 작용하는 상태에 있으며, 나머지는 정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완성된 사람 안에서는 모든 센터들이 완전히 작용하여 완벽한 심령적 전개와 완벽한 메카니즘을 만들어낸다. 

영적 에너지에 대해 동양에서 강조하는 것과 구조 또는 메카니즘에 대해 서양에서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상위 국면과 하위 국면에서 모두 사람의 심령적 본성을 완전히 설명한다. 

동양적 생기론적 착상과 서양적 또는 기계론적 착상을 결합시키기 위해 그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면 에텔체의 존재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동양적 체계는 난해하고 복잡하며 요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간단한 소개가 이루어져야만 하고 그래서 다음의 개요를 제시한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그 분야의 지적인 개관이 된다면, 아무리 간단할지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개요를 제시할 때 우리는 “동양의 심리학자가 믿는다” 또는 “동양주의자가 말한다” 또는 유사한 표현을 계속 반복하는 대신에 긍정적인 진술을 할 것이다. 서양적인 사고에는 그것이 실험을 통해서 입증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반증된 것으로 기각되는 하나의 가설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소개와 함께 우리는 동양의 이론을 요약할 것이다. 

모든 것의 원천인 보편적인 본체가 있지만, 매우 순화되어 있고, 미세해서 인간 지성이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벗어나 있다. 그것과 비교하면, 매우 미묘한 향기, 춤추는 태양빛의 발광, 진홍빛 일몰의 영광조차도 거칠고 현세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영원히 보이지 않는 “빛의 거미줄”이다. 

물질성을 암시하는 “본체substance”라는 핵심어는 오류어misnomer이다. 그러나 이 단어를 라틴 어원으로 환원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즉 “sub”는 아래이고 “sto”는 서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본체는 아래 쪽에 서 있는 것 또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sub-stans(본체)”라는 철자 또는 오철자가 보다 더 직설적이고 시사적이다. 

이 보편적인 본체가 미세하고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에서 물질보다 훨씬 더 밀도가 높다. 만약 우리가 모든 사실과 가능성에 반하는 가설인 보편적인 본체 밖에서 동인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외적인 동인이 보편적인 본체를 압축시키거나 다른 식으로 외부에서 영향을 미친다면, 본체는 이미 알려진 물질보다 더 밀도가 높을 것이다. 

생명, 중단 없는 생명은 본체에 내재하며 그의 영속적인 대응물이다. 생명과 본체는 동일한 하나이고,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한 하나이지만, 한 실재의 상이한 측면들이다. 생명은 양전기와 같고 본체는 음전기와 같다. 생명은 동적이고 본체는 정적이다. 생명은 활동성이나 영혼이고 본체는 형상 또는 물질이다. 생명은 낳아주신 아버지이고, 본체는 품어주신 어머니이다. 

생명과 본체의 이러한 두 측면에 더하여, 세 번째 것도 있다. 생명은 이론적 또는 잠재적인 활동성이고 작업장을 필요로 한다. 본체는 이것을 제공하고 생명과 본체가 결합하면 활동적인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그래서 단일한 실재, 즉 보편적인 본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공존하는 이원성, 즉 생명과 본체가 있으며, 그와 동시에 공존하는 삼개조, 즉 생명, 본체, 그리고 이른바 의식 또는 혼의 상호작용이 있다. 

현현된 세계 전체는 에너지(그리고 공통 인자인 본체와 의식)로부터 나온다. 극히 작은 모래알로부터 별이 빛나는 하늘의 웅대한 회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시인으로부터 부처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모든 것은 에너지의 산물들이다. 물질은 가장 조밀하거나 가장 낮은 형태의 에너지이다. 영혼은 이와 같이 가장 높거나 가장 미세한 형태의 에너지이다. 그래서 물질은 하강하고 하락한 영혼이고 거꾸로 영혼은 상승하고 영광이 더해진 물질이다. 

밀도를 취할 때 에너지는 7 가지 단계 또는 계들을 거쳐서 하강한다. 대개의 경우 그 중에서 세 가지를 구현하는데, 사람은 육체, 감정적 메카니즘 그리고 심체mind-body를 갖게 되어 결국 세 가지 국면에서 기능하게 되거나 세 가지 계에서, 즉 물리계, 감정계 그리고 멘탈(mental: 정신)계에서 깨어 있게 된다. 그는 네 번째 이상의 요소, 즉, 혼, 자아Self를 인식하게 되는 경계에 서게 되고 그 이후에는 그것의 실현을 위해 깨어 나게 될 것이다. 세 가지 상위 계들에 대해서는 이 기본적인 논의에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7 가지 계들과 아울러 각 계에는 7 가지 하위계가 있다. 우리는 가장 낮은 물리계의 7 가지 하위 계만을 논할 것이다. 

물리계의 세 가지 하위 계들은 모든 학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고체, 액체 그리고 기체로 예를 들면, 얼음, 물 그리고 증기이다. 그에 더하여 네 가지 더 미세한 계들 또는 매우 다른 4 가지의 에테르가 있다. 이들 네 가지는 잘 알려진 세 가지 하위 계와 각각 공존하고 있으며, 거기로 침투한다. 

사람의 육체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도 또한 에테르적 대응물, 즉 에텔체를 갖고 있다. 거친 육체가 음인 반면, 이것은 양이다. 에텔체는 응집 인자이며, 생명과 존재 안에서 육체를 유지한다. 
사람이건 어떤 물건이건 에테르적 대응물은 보편적인 본체, 보편적인 생명, 그리고 보편적인 에너지의 성질을 띤다. 그것은 이 모든 것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족적이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보편적인 에너지의 저장소이며, 에테르적 대응물 속에서 살며 움직이고 존재한다. 에너지는 그래서 에테르적 대응물을 통해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경우도 참이다. 보편적인 에너지는 그의 에텔체를 통해 작용한다. 그리고 사람이 7 가지 계들에 존재하는 것처럼 에텔체에는 에너지와 7 가지 접촉하는 지점이 있지만, 세 가지 계들만이 활동적이고 네 가지는 휴면 상태인 것처럼 세 가지 에너지 센터들만이 완전히 발전되어 있고 네 가지는 아직 발전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다룬다. 

서양 과학과 동양 이론을 조화시킬 때, 이 둘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자연히 제기된다. 

다름 아닌 아이작 뉴톤 경과 같은 과학자는 의심 없이 에테르라는 보편적인 매질을 받아들인다. 프린키피아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모든 탁한 체들 속에 가득 차 있고 숨어 있는 대단히 미세한 어떤 활기에 관련된 것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활기의 힘과 활동에 의해 체의 입자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견인하고 연속적이라면 뭉친다. 그리고 이웃하는 전기체들은 이웃하는 미립자들을 견인하는 것만큼 잘 반발하며 먼 거리 사이에서도 작용한다. 그리고 빛이 방출되고, 반사되고, 굴절되며 굴곡이 생기면서, 체들을 타격한다. 그러면 온통 동요가 일어나고 동물적 몸의 구성 부분들이 의지의 명령, 이 활기의 파동에 의해 외부적인 감각 기관으로부터 뇌에까지, 그리고 뇌로부터 근육으로 신경의 견고한 통로를 따라 상호 유도되면서 움직인다. 그러나 이들은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전기적이고 융통성있는 생기의 작용 법칙을 정확하게 결정하고 입증하는 데에 요구되는 충분한 실험을 우리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에드윈 어서 버트 박사, 현대 물리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들, p. 275. 


위의 인용으로부터 뉴톤은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형상을 밑받침하는 에텔체의 진상을 인식했다고 말할 수 있다. 

뉴톤이 현 세기 이전에 살았기 때문에 최근 판 브리태니카 백과사전(1926)으로 눈을 돌려 보자. 다음 설명은 “에테르”라는 제목 아래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공간이 단지 기하학적 추상물인지 또는 연구될 수 있는 명확한 물리적인 속성을 갖는 지는 이러저러한 형태로 논의되어 왔다. 물질에 의해 점유되는 부분과 마찬가지로 본체는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떤 의심도 없다. 그러나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이 부재한 공간에서 매개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물리적인 속성도 갖고 있으며, 그에 대한 충분한 연구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셈이다. 

“이 물리적인 속성들은 감각에 직접 미치지 않고, 그래서 좀 모호하다. 그러나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의문이 없다. 공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물리적인 속성을 부여하는 공간이 기하학적 추상물 이상의 그 무엇이고 실제적인 현실처럼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거기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적당하다. 이름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오래 전에 에테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아이작 뉴톤에 의해 채택되었고, 현재도 적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에테르라는 용어는 모든 공간에 차 있고, 어디에서나 어떤 분열이나 공백이 없는 진정한 일체이고, 편재하는 물리적인 실재를 뜻하며, 물질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구성한다는 인식이 증가해 가는 추세이다. 물질 자체는 이로부터 변화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래서 에테르는 물질 조각과 조각들 사이에서 이른바 중력을 전달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아무리 작고,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물질 조각들 사이에서 방사되는 파동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목적을 위해서 훨씬 더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에테르의 속성은 물질로 표현될 수는 없다. 하지만 더 좋은 단서가 없기 때문에 비유를 통해 말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물질이라면,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물체처럼 이름이 붙여져야 하고, 탄성과 밀도로 표시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 실제로 표현되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높다고 보이는 것처럼 원자 물질이 에테르 속에 있는 어떤 구조라면 에테르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알려진 물질적 본체보다 훨씬 더 밀도가 높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물질은 본체를 이루는 매질 속에서 존속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섬세한 구조이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제 13판: 에테르 항목 


이 견해는 다른 과학자들이 부연하고 있다. 

17 세기의 저작에서 버트 박사가 인용한 캠브리지의 플라톤주의자 헨리 무어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자가 철학자에게 영적인 본체가 자연에 존재하는지 묻는 것이 필요할까? 이 본체가 몸의 모든 기질, 또는 적어도 동작, 모습, 장기의 위치와 같이 몸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이 본체가 몸을 제거하고 중단시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에 관련되는 것은 무엇이건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작은 부분을 결합시키고, 나누고, 흩어놓고, 묶고 형성시킬 수 있고, 형태에 질서를 부여하고 배치된 것을 회전시키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움직이고 그 회전 운동을 저지하고, 원리에 따라 빛, 색, 그리고 다른 감각 대상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추가할 수 있다... 영적인 본체는 마지막으로 끈도 없고, 갈고리도 없고, 영사기나 다른 도구도 없지만 다만 자신을 적응시켜, 물질을 결합시키고, 나누며, 추진시키며, 동시에 조절을 유지하는 신기한 응집력과 분산력을 갖는다. 그것이 자신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을 분쇄하여 그 자신을 다시 확장하는 것 같은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 무어를 논하면서 버트 박사는 계속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무어는 인간 안에 영적인 본체가 있다는 결론으로부터 모든 자연 안에 이와 유사하고 더 거대한 영적인 본체가 있다는 가정으로 자신의 추론을 확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의 사실들은 인간보다 더 간단한 기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에드윈 어서 버트, 현대물리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들, pp. 131-132. 


또한 17 세기 저작에서도 로버트 보일은 동일한 가정을 제시하면서, 에테르의 두 가지 기능을 연속적인 충격에 의해 운동을 전파시키고 자아와 같은 신비한 현상을 발생시키는 매질이라고 생각했다. 보일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에 그러한 본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현상들을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몇 가지 실험에서 매우 미세하고, 확산되지 않는 에테르적 본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소에 대한 설명에 대해 여러 가지 정확한 답이 내려져 있다고 해도, 이에 대해 살펴 보지는 않겠다.” 상동, pp. 182, 183. 


현대로 다시 돌아와, 윌리엄 버겟 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주는 동물과 식물의 전 영역을 차지하는 조직화된 활기의 세계, 즉 지성과 물질 세계 사이의 연결 고리인 물리적, 생기적, 그리고 지적인 현상의 집합으로 나타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가사의하지만, 물질의 분자 간 운동은 물리적인 것과는 다른, 매질의 성질에서 기원한다. 이것은 생명 없는 물질 운동을 통제하는 일반 법칙을 대체하고, 간섭할 수 없는 법칙에 기원하지 않는 운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동일한 원리에서 힘이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윌리엄 버렛 경, 보이지 않는 것의 입구에서, p. 274. 


동양의 가르침은 생기체를 육체와 지성체 사이의 매개라고 간주한다. 그것은 태양계에서 인간의 마음과 우주심의 매개자로 작용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윌리엄 버렛이 말한 “물리적, 생기적 그리고 지성적”인 세 가지 항목을 언급하는 것은 흥미있다 

올리버 롯지 경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사이의 소통에 대한 견해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순수과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이 시대의 전선에 서 있다. 그는 말한다. 

“원자를 결합시키는 에테르, 즉 몸의 특징적인 구성에 본질적인 결합 에테르는 어떠한가, 어떤 것이 물질 자체만큼 근본적인가? 

“우리는 대개 몸의 에테르 측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감지하는 감각 기관을 갖고 있지 못하며, 물질을 직접적으로 파악한다. 어린 시절에는 물질만을 파악한다고 해도, 성장하면서 에테르를 추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파악하기도 한다. 우리는 특징적인 외형이나 어떤 외형적인 몸도 응집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즉 에테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에테르는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비물질화된 부분, 즉 변형이 일어나는 부분이며, 잠재적인 에너지의 그릇, 물질 원자들이 들어 있는 본체이다. 물질로 구성되는 몸이 있을뿐만 아니라, 에테르로 구성되는 몸도 있다. 둘은 공존하고 있다.” 올리버 로저 경, 에테르와 현실, pp. 161.162. 


그는 히버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다시 동일한 주제를 거론하고 있으며, 매우 재미있고 시사적인 결론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고 있다. 

“빛은 에테르가 미치는 영향의 일종이다. 빛이 에테르와 맺는 관계는 소리가 물질과 맺는 관계와 같다... 모든 시공의 법칙에 따르고, 주로 지상의 에너지 근원인 에너지 법칙에 완전히 지배되며, 물리적 힘이 현현되는 것을 모두 다스리고, 탄성과 견인 등 모든 물질의 속성의 근간을 이루면서 물리학의 계획표 안에 에테르는 적합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정된 에테르의 전위들이 우주적 건설재라고 입증될 가능성이 있다... 무차별적인 에테르는 대단히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물질적인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그리고 온 공간을 채우는 일체이다. 이원성은 물리학의 도식인 물질과 에테르를 통해서 나타난다. 

“모든 동역학 에너지는 원자든 육체적 형태든 이른바 물질에 속해 있다. 운동이나 이동은 그것의 특징이다. 모든 정적인 에너지는 에테르, 수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에테르에 속한다. 에너지는 항상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즉 에테르에서 물질로 또는 그 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 

“이제, 모든 감지할 수 있는 대상은 물질적인 대응물과 에테르적인 대응물을 모두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전자만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지만, 후자는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 다른 측면을 파악하는 어려움, 간접적인 추론의 필요성은 우리에게 물질을 알려 주고 에테르에 대해서는 알려 주지 않는 감각 기관의 본성에 본질적이고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나 전자는 후자만큼 생생하고 실제적이며 공존과 상호 작용은 본질적으로 결합하는 그들의 성질이다. 모든 곳에 그리고 언제나 상호작용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에테르 없는 지역은 없다 하더라도 많은 지역에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호작용의 가능성과 실재성은 모든 곳에 퍼져 있으며, 현세적인 경험 전체를 완전하게 구성한다.” 

보충설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에테르는 사물의 물리적인 틀에 속하며, 그것이 심령적 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물질이 그런 것처럼 심령적 목적을 보조할 것이다. 테이트 교수와 밸포어 스튜어트 교수는 1875년 이전까지 공간의 에테르에 대한 심령적 의미를 추측했고, 보이지 않는 우주라는 책에서 비판된 종교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다루었다. 그리고 위대한 수리 물리학자 제임스 크러크 맥스웰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의 제 9판 “에테르” 항 결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초감각적이고 보편적인 연결 매질이 실제로 존재하며 확실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신뢰를 표명하였다.” 올리버 롯지 경, 에테르, 물질 그리고 혼, 히버트 저널, 1919년 1월. 


펜실배니어 대학의 내분비학 교수인 사져스 박사는 이 보편적인 매질에 대한 신뢰를 다음과 같은 말로 확언했다. 

“에테르와 같은 본래의 지성적이고 협동적이며 창조적인 매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분명해 보인다... 

“과학자들이 해석하는 에테르는 모든 조건들을 만족시키고 만족시킬 수 있는, 과학적으로 알려진 유일한 매체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모든 물질에 스며들어 있으며, 파의 움직임에 의해 우주에 제한 없이 모든 공간에 퍼져 있다. 그것은 실제로 태양과 가장 멀리 떨어진 항성에서 오는 빛의 방사 에너지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선’파, 무선 전파, 베크렐 광선, 엑스 또는 뢴트겐선 등을 전달하는 매체이이다. 

“에테르는 우주와 지상에서 창조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에테르는 협동과 지성으로 물질을 만드는 것처럼 우주의 에테르는 태양계를 만들고, 그것이 형성하는 모든 화학적 원소들에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속성들을 제공한다...” E. de M 샤스 사져스. 의학박사, ScD. LLD, 과학에 의해 제시된 종교의 힘, pp. 152, 153. 


옥스퍼드 대학의 조아드 박사는 물질을 활기있게 하는 이 생기력, 즉 ‘생명력’의 활동을 우리에게 그려 주며 생명과 형상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준다. 그는 진정 에테르의 대응물과 그를 통해 작용하는, 동양적 에너지 이론에 근접해 있다. 

“생명력. 우선 우주가 순전히 물질적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에너지나 목적이 없고 생명이 없는 혼돈, 죽음, 그리고 공허였다. 어떤 단계에서 이 무기적인 우주로, 그리고 어떤 설명되지 않는 근원으로부터 생명의 원리가 도입되었다. 나는 물질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생명을 통해 의도한다. 처음에는 맹목적이고 뒤뚱거리고 순전히 본능적인 충동이나 기분으로 더 높은 의식을 얻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스스로를 표현하려고 한다. 우리는 완전하고 보편적인 의식의 성취라고 할 수 있는, 생명력의 궁극 목적을 이해할 수 있고, 그 결과는 생명과 에너지가 온 우주에 스며듦게 함으로써 보장될 수 있고 이것은 ‘물질’ 세계로서 시작한 것이 ‘마음’이나 ‘영혼’의 세계로서 완성되게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에너지와 생명의 원리가 물질에 주입되고 스며들면서 물질 속에서 그리고 물질을 통해서 일한다. 우리는 그렇게 주입된 물질에 살아 있는 유기체의 이름을 부여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그 목적이 성취되면,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생명력이 창조한 도구 또는 무기의 빛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우주 그 자체처럼 살아 있는 각각의 유기체는 전선이 전류를 담을 수 있는 것과 흡사하게 생명에 의해 활기를 받은 물질의 토대를 형성한다. 

“생명력은 전능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정복하려는 물질에 의해 제한되고, 그 방법은 실험적이며, 그에 의해 창조된 유기체로 구성된 사람들 속에서 그것이 도달하는 진화 단계에 따라 변화한다. 다른 형태의 존재들은 다른 단계들에서 그 목적에 가장 잘 봉사한다.” C. E. M. 조아드 박사, 마음과 물질, pp. 178, 179. 


철학적 주제에 대해서 가장 폭넓게 읽히고 인기있는 작가인 윌 듀런트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기본적이라는 생각을 점점 덜 하게 되고, 육신이 생명과 마음의 외부적 징표인 것처럼 단지 에너지가 외화된 것일뿐이라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된다... 형상과 힘을 주는 물질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자발성과 생명을 갖는 비물질적인 것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미세하고 숨겨져 있지만, 항상 드러나는 생명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의 궁극적 정수이다... 생명은 우선하며 내적이다. 물질은 논리상, 그리고 의미 상 시간적으로 그와 동시적이고, 공간적으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본성 상 그것에 이차적이다. 물질은 생명의 형상이고 그의 가시적 성질이다... 

“생명은 형상의 기능이 아니고, 형상이 생명의 산물이다. 물질의 무게와 굳기는 원자 내적 에너지의 결과이고 표현이며 몸 안의 모든 근육이나 세포는 주조된 욕망의 도구이다.” 윌 듀런트, 철학의 저택. pp. 66, 67, 80, 81. 


이 책들과 과학자들은 에너지 또는 생명의 생기체의 매질인 에텔체에 대한 동양의 가르침이 신비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의 모호한 꿈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서양 연구가들에 의해 자연의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견해를 요약하면서 이들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몸 뒤에는 에테르 물질로 구성된 주관적인 형태가 있으며, 이는 에너지, 또는 프라나의 생명 원리의 행위자로 작용한다. 이 생명 원리는 혼의 에너지 측면이며, 에텔체를 통해 혼은 형상에 활기를 부여하고, 특이한 성격과 속성을 부여하고 욕망들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마음의 활동을 통해 그것을 지휘한다. 머리를 통해 혼은 몸을 의식적인 활동으로 동력화하고 심장을 통해 신체의 모든 부분들에 생명이 퍼지게 한다. 

이 이론은 서양의 물활론과 밀접한 상관성을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현재로써는 활력론(animism: 정령론)이라는 용어로 충분하지만, 인간 의식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발전들 때문에 “물력론(dynamism)”이라는 용어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완전히 의식적인 존재가 된 사람과 통합되어 작용하는 개성에게, 의식적인 목적과 지도하는 의지를 처음으로 증명하는 때가 되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언급된 물리적, 감각적, 정신적인 인간 본성의 세 가지 상태들은 인류사에서 비로소 통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휘하는 자아는 조절할 수 있으며, 마음을 통해 생기체 또는 에텔체에 작용하고, 뇌에서 그 접촉점을 갖으면서 그 도구를 완전히 조절하여 표현하고 이어서 창조적인 활동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키설링이 “심오한 존재”라고 부른 것이 출현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 문제는 심오한 존재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우리가 인간의 능력과 대조되는 특성으로 그의 존재성을 말할 때, 그것은 인간의 생생한 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존재가 결정한다고 말하는 경우, 그 모든 언설들에 개별적인 생명이 침투해 있다는 것, 모든 개개의 표현은 개성을 발산한다는 것, 그리고 이 개성은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그러한 통찰은 그것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실제로 성취될 수 있다. 그것은 마음과 혼을 지닌 존재로써 인간이 그 안에서 자신의 의식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감각 연관으로 표현된다는 사실 덕택에 가능하다. 그는 자유롭게 자신이 즐겁게 여기는 곳은 어느 것이나 중시할 수 있다. 그래서 중시하는 ‘위치’에 따라서 심령적인 유기체는 그 센터를 실제로 변화시켜서 새로운 존재의 센터를 얻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센터가 존재 안에 놓이는지 표면에 놓이는지는 의식의 센터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론적인 연구가 보여 준다면, 필요한 변화 과정을 유도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적으로 모든 사람은 그 존재를 향상시키는 데에 성공할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해서 그는 자신의 본질적인 존재성에만 지속적으로 강조를 두고 실제로 자신의 내적 존재와 일치할 것만을 지속적으로 요구받는다. 분명 이 과제는 어려운 것이다. 그 해법은 매우 느린 과정일뿐만 아니라 특별한 훈련 기법을 필요로 한다.” 허먼 키설링, 백작, 창조적인 이해, pp. 180, 181. 


메카니즘, 생명과 목적, 의지의 종합으로써 인간이 혼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서양과 동양의 심리학자들이 연합해서 분비샘과 생기체, 그리고 에너지 센터들과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이해한다면 크게 촉진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와 관련해서 호킹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건전한 정신 건강법의 도움으로 보다 나은 인류의 구체적인 미래를 바라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돌팔이 의사의 시대가 지나간 뒤에 그리고 어느 정도 그들의 도움으로 요가와 같은 수련의 영적인 의미가 서양 심리학의 건전한 요소들과 온전한 윤리 체계와 결합함으로써 자아 완성의 가능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 중 어떤 것도 다른 것이 없이는 가치가 많지 않을 것이다.” Wm. E. 호킹, 몸과 자유, p. 75. 


에너지 센터에 대한 동양의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두 가지 점을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하나는 혼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세기 동안 이루어진 혼 의식의 위치에 대한 증언을 고찰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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